피터 엘보는 말했다.
'나는 내가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글을 쓰는 것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너무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엉망이겠는가. 글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냥 쓰기 시작해서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무게 중심도 찾지 못한 채. 하지만 나는 무작정 시작하려고 한다. 아직 무게 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걸 참아내야 한다. 끝까지 가봐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과정 중심 글쓰기이다. 각 단계를 충분히 거치며 성장하는 글쓰기.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해서는 정말 쓰기만 한다. 개요를 짜거나 의도에 맞는 단어나 생각을 고르거나 편집을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오직 많이 쓰고 빨리 쓰겠다는 신념만이 중요하다. 500자를 쓰든, 1000자를 쓰든, 10분, 45분, 아니 3-4시간을 내리 글만 쓰든 자기 검열을 최소화하고 '이게 글인가?'라는 생각보다는 '쓰레기를 쓰다 나중에 필요 없는 건 버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쓴다. 오늘은 정말 쓸 게 없으면, '쓸 게 없다'라고 계속 쓴다. 오랜 시간 동안 쓰라는 말은 아니다. 많은 양을 빠르게 써내려 가야 한다는 뜻이다. 빠르다는 것은 타이핑의 속도이지, 유창함의 빠르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피터 엘보를 읽으면서 글쓰기도 골프나 수영처럼 힘을 빼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 쓰는 과정에서 믿을 것은 우리 각자가 겪어온 글쓰기의 어려움뿐이다. 난 글을 쓰면서 마음의 언어도, 타국의 말도 익혔다. 오직 이런 과정만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쓰고 싶다면 공력이 들어간 글에서 바람을 빼고 그러모은 글들에 대한 애정도 버려야 한다.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글은 아이러니하게 더욱 자유롭게 활보한다. 제 갈길을 가면서 길을 만든다.
그는 '엉뚱한 단어로 엉뚱한 의도를 씀으로써 시작해야 하며, 적절한 단어로 정확한 의도를 쓰게 될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면 안 된다'라고도 했다.
나는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장황한 글을 쓸 때는 분명 뭔가를 감추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도를 숨기고 자신을 숨기고 진실을 숨긴다. 그럴 때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어 이불 밖으로 나올 때 드러나는 목소리는 무엇일까? 미처 말하지 못한, 용기가 나지 않아서 꺼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말은 줄이고 글은 늘려야 한다. 글을 편집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읽기를 허락할 만큼 윤곽을 드러내고 목소리가 공명하게 하는 일이다. 단어 이불은 정말 포근해서 웬만해선 걷어내기 힘들다. 그래서 계속 써야 한다. 자연스럽게 많은 글 속에서 빛나는 하나의 주제를 찾을 때까지. 그 과정에서 어떤 평가도 자제해야 한다. 편집의 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피터 엘보의 책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