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의 달이 뜨면
*'730을 찾아서'는 하루에 한 권씩 총 365일 동안 읽어도 좋을 문학책, 비문학책 각각 365권을 찾아 서재를 완성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책 일기.
전쟁이 시작되기 전엔 불안만 있지만 막상 판이 커지면 온갖 감정과 심리가 판을 친다. 대중의 심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피처 삼아 금단과 금기를 깨는 일들이 허다하고, 전쟁에 대한 헛소문과 망상도 스멀스멀 시작된다. 어쩌면 이들은 전쟁이 싫은 게 아니라 전쟁에서 지는 게 싫은 게 아닐까 싶기도.
버지니아 울프는 전쟁 통에 우울증이 더욱 심각해져 내가 알던 그 자살을 감행한다. 로즈 맥콜리도 런던 중심부의 그녀의 아파트가 폭탄에 직격탄을 맞아 모든 소지품과 작업 중이던 원고를 잃었다. 유령 같은 삶.
정말 크고 끔찍한 폭격기의 달이 뜨고 지는 중에도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남편의 사치와 도박, 술버릇에 지쳐 유부남과 새로운 사랑을...
읽는 내가 다 지치는 이 어지러운 중에도 처칠은 지치지도 않는다. 그의 웅변적 힘은 이 글을 읽는 내내 흐트러지지 않는 명분이었다. 모든 것이 기세. 전쟁도 삶도. 목숨 걸고 싸우려는 총리와 꼭 닮은 국민들도 있다. 정말 공습이 터진다면 징징거릴 겨를이 없다. 미국의 지원이 있기까지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끈질기고 열렬한 처칠의 구애는 지켜볼만하다. 하지만 딸의 일기 속 그는 너무나 평범한 아버지 처칠일뿐이고.
역사는 어쩌면 전쟁과 전쟁 사이에 있는 듯하다. 잃어버린 명분을 되찾는 시도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하고. 처칠의 리더십과 용기. 그 날랜 기세를 계속 붙들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가장 고픈 단어. 용기. 그 두 글자.
끔찍한 전쟁이었지만 적당한 나이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만 있다면 전쟁도 굉장한 이벤트였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전쟁이 누군가에겐 이해할 만한 것이라니.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던 구절.
또 하나, 전쟁을 삶에 비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는 몹시 우울해서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보낸다고 한다. 우리가 원했던 적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야기의 끝으로 가면서,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의 정신력이 적극적으로 변한다. 대피소에 웅크리고 있기보다 뭐라도 하려고 한다. 단련! 을 외치지만 단련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해 버린 시간에 대해 깨닫는다. 어떻게 헤쳐나가는 게 좋을지 모를 때, 눈앞의 적(이라 생각하는 것)을 폭격하다 자기 자신도 무찔러버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히틀러나 괴벨스, 괴링일지도 모르지만 꼭 그들에게 국한된 것 같지도 않고.
아, 보고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보고서도 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