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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을 찾아서(6): 이해 없는 사랑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by 뭉클

*'730을 찾아서'는 하루에 한 권씩 총 365일 동안 읽어도 좋을 문학책, 비문학책 각각 365권을 찾아 서재를 완성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책 일기.



명랑한, 짧고, 투쟁 없는.

이 세 형용사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이 소설을 읽어내는 동력.


이시습의 막내동생과도 같은 반려견 이시봉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로 부쩍 더 형제처럼 지낸다. 새벽에 이시봉과 산책하는 알코올중독자의 삶. 이시봉에게서 죽은 남편을 떠올릴 엄마, 자신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동생 이시현과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런 시습에게 이시봉의 조상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거쳐 한국까지 흘러오게 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 품종이라고 말하는 무리들이 찾아오고.


이 소설은 두껍고 프랑스와 스페인 역사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스케일이지만 품종이라는 소재를 꺼내든 이유만큼은 명확하다. (인간의 유구한 찌질함에 대하여..)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가 데려왔던 이시봉의 조상들을 거슬러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개와 비슷하거나 개만도 못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개-로 시작하는(그러나 사실상 개와 별 상관도 없는) 표현들도 등장한다. '개빡치는' 내용들이 많다는 뜻이다. 앙시앙 하우스의 정채민 대표의 과거 서사와 스페인 왕가의 서사, 이시습과 이시봉의 서사가 한 곳에 모이면서 우리는 어떤 메시지에 도달한다.


명랑하다, 아니, 명랑해'보인다.' 이시봉은. 그것은 누구의 눈에 그러한가.

짧은 삶. 누구의 삶에 비해 그러한가.

투쟁 없는. 인간의 투쟁으로 가득 찬 삶과 대조된다.


이시봉에 대해 말하는 내내 인간에 대해 말한다. 인간 중심의 시선과 관점에 대해 말한다. 개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본 영원히 모를 세계에 대해서.


'동물의 인간화'라는 표현은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관통하는 단어 중 하나. 극 중 동생 이시현의 입을 통해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명백히 드러낸다.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아가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 너는 나의 '대상, 소유물, (급기야) 상품.' 이는 계급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투쟁에 끼어들게 된 투쟁 없는 존재들.


반면, 우리는 인간의 동물화를 견디지 못한다. 동물의 복지, 동물의 권리를 내세우면서도 결국 동물은 대체물, 수단, 희생양으로 남는다. 인간의 무력감, 충동, 욕망, 자기애를 투사하는 수단으로서의 동물. 인간과 동물뿐 아니라 동물과 동물사이에도 계급을 나누는 지독한 인간. 소설의 말미엔 인간인 느낌이 좀 별로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수치심과 모욕을 준다지. 우린 다른 종들과 얼마나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니, 잘 지낼 수 없다면 좀 떨어져 지낼 필요가 있어.





이기호-문학동네-2025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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