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당신이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
유독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옷덕들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아웃핏을 입어 보일 때지요. 독자들의 가을철 it-item은 무엇인가요? 옷장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남몰래 집에서만 입어보았던, 그 행위만으로도 당신을 설레게 했던 아이템 말이에요.
저는 가을 하면 단연 『트렌치코트』를 떠올립니다. 혹자는 가을이 너무 짧아서, 트렌치코트는 실용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트렌치코트는 다른 간절기 외투가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최초의 트렌치코트가 탄생한 건 1820년대예요. 지금까지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고, 또 굉장히 보편적인 것을 보면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걸 알 수 있죠.
엄밀히 말하자면 트렌치코트는 1870년대에 탄생했습니다. 1820년대의 트렌치코트는 ‘맥코트’라고 불렸는데, 이는 방수성 좋은 원단을 발명한 매킨토시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맥코트도 트렌치코트와 마찬가지로 비를 피할 용도였지요. 관리자와 고위직들은 맥코트를 근무복처럼 착용했습니다.
맥킨토시의 코트는 방수가 좋았지만, 통기성이 약하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Burberry는 이런 취약점을 개선해 ‘개버딘’이라는 원단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개버딘 코튼의 밀도는 아주 높아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코트를 만들기 제격이었어요. 개버딘 천을 쓰기 시작한 1879년, 트렌치라고 부를 만한 코트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Burberrys와 Aquascutum은 이 옷의 대표적인 메이커였습니다.
트렌치코트의 최종적인 진화는 세계대전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계급을 표시할 수 있도록 에폴렛(견장)을 추가하고, 비를 잘 흘려보내도록 스톰 쉴드를 덧댔죠. 또 통기와 보호를 동시에 용이하게 하기 위해, 팔과 목을 단단히 여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밀리터리 웨어는 보통 남성적이고 투박해 보이기 마련이지만 트렌치코트만큼은 예외입니다. 트렌치코트의 밀리터리 디테일들은 오히려, 부드러움의 미학을 완성합니다. 단추를 몇 개 채우는지, 손목은 얼마나 여미는지, 벨트를 얼마나 조이는지에 따라 옷의 볼륨을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가령 트렌치코트의 벨트를 조이면 투피스 드레스처럼 보입니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갔다가,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하부가 꼭 플레어스커트 같아요. 부드럽게 펄럭이는 아랫단이 우아합니다. 한편 상체 볼륨 또한 강조됩니다. 남성의 경우 굳고 강인한 골격이, 여성의 경우 신체 특유의 곡선미가 드러나 아름답습니다. 다른 디테일들 물론 스타일에 따라 변형 가능합니다. 손목을 조여 커프스에 볼륨을 줄 수도 있죠. 이런 게 바로 트렌치코트의 매력인 듯합니다.
트렌치코트에는 재미있는 장치가 많은 탓에, 재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많은 브랜드들은 트렌치코트의 특정한 디테일을 더했다가 뺐다, 또 변형시키기도 하며 브랜드의 미학을 투영하고 있지요. 때로는 기본적인 실루엣을 수정해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가령 디올과 생 로랑의 트렌치코트는 굉장히 다른데, 그 둘의 차이는 제게 굉장히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디올의 23 Ready-to-wear에서는 트렌치코트를 판초나 드레스처럼 해석합니다. 싱글브레스트도 인상적이지만, 소매를 뺄 수 있는 방법을 달리 한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풀오버 형태로 입어야만 할 것 같아요.
디올의 코트는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반면, 생 로랑의 트렌치코트는 굉장히 직선적입니다. 어깨 부분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래글런 패턴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에디 슬리먼은 각을 잔뜩 살렸지요. 암홀과 팔 부분의 통, 상동의 품 자체도 넓지 않아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본 편에서는 트렌치코트의 역사와 생김새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어질 글에서는 파리 패션위크 기간 동안 마주했던 트렌치코트 스타일링을 살펴볼 계획입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오늘도 모쪼록 즐겨주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