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Classics Vol. 20
지지난 주 파리에서는 패션위크가 한창이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패션 행사라는 이름에 걸맞게역시나 많은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였죠. 23SS 쇼를 직접 볼 수 없었기에 아쉬웠던 찰나, 제 눈길을 끈 것은 일반인들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새 시즌의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의 패션은 이곳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신선함과 대중성이라는 기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고요. 패션위크는 이렇게, 우리에게는 오래된 취향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죠. 패션위크가 처음이기에 ‘이런 나를 우습게 보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한 켠에 있었고요.
그래서 말을 걸기 위해 준비했던 낯선 나라의 언어는, 목구멍 끝에서 고꾸라져, 끝내 내뱉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나를 겁먹게 하는 대포 카메라들 사이에서 구형 아이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 때, 제게 먼저 다가와 당신 사진을 서너 장 찍어도 괜찮겠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카메라에 웃음을 비추면서, 혼자만 느끼고 있던 은밀한 긴장감은 그새 사라져버렸습니다.
튈르리 초입에서 만난 점잖은 흑인 남성. 그는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이야기에, 수줍은 미소로 화답하였습니다. 그의 레이어드와 액세사리 스타일링은 훌륭했습니다. 셔츠(이너)- 패디드 베스트(중간 이너) – 맥코트(아우터)는 실용적이면서도 그 색감이 조화로웠죠.
평범해보일 수 있는 스타일의 엣지를 더한 건 단연 악세서리였습니다. 슈프림 캠프캡, 진주 목걸이, 그리고 초록색 캔버스 가방을 어느 누가 쉽게 매치할 수 있을까요. 캐주얼을 정말 잘 이해하는 듯 했습니다.
이 사내에게 기교는 없었지만, 그런 모습이 저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웠습니다. 맥코트와 후드, 펜던트 목걸이, 스포츠 선글라스.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템이지만 멋진 수염과 헤어스타일 덕에, 온전한 그의 스타일이 된 듯 합니다.
이 남자의 트렌치코트 스타일은, 요즘 많이들 입는 오버핏과 정 반대의 핏입니다. 어깨가 꼭 맞고, 팔과 가슴통이 좁은 것이 브리티시 더블 수트 같았어요. 얼핏 보면, 한국 메인스트림에서는 외면받을 만한 스타일이지만, 그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몸에 잘 맞는 수트가 만들어 내는 V존, 높게 세운 깃,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가 모두 어우러져 그의 전문성과 섹시함을 느낄 수 있었달까요.
제 최애는 자칭 ‘프렌치 클래식 스타일’이라고 말하던 이 노인이었습니다. 그와 세월을 함께한 어떤 옷이, 그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Modern Classic이라는 시리즈의 방향성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며 스타일이었습니다. 바랜 듯한 면바지와 트렌치 코트, 허나 여전히 관리가 잘 된 더비슈즈는, ‘옷을 좋아하는 남성’으로서 그를 동경할 수밖에 없도록 했죠.
이 노인은 빈티지를 사랑했습니다. 트렌치 코트는 물론 그의 에르메스 타이도 빈티지라며, 손수 꺼내어 보여주기까지 했죠. 그의 환한 표정에서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옷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못지 않구나.'
남성복에 대한 관심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튈르리 가든의 사랑스러운 그녀들을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코트 뒤에 적힌 익숙한 문자를 쫓아 키치한 스타일의 소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잘 못합니다"라는 말을 한국 말로 할 줄 아는 재미있는 소녀였죠. 하지만 우리는 이 자리를 즐겼고, 서로가 그걸 아는 미소를 교환했습니다. 우산을 쓰고 있던 게 우아했던 리나. 트렌치코트의 손목 스트랩을 조여 커프스 볼륨을 만든 것이 아름다웠어요.
독자들은 이 스타일들을 어떻게 보셨나요? 특별한 기교가 있다거나, 트렌드를 좇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멋이란 곧, 옷이 아닌 사람의 힘이며, 일상성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멋을 만드는 건 LVMH같은 거대 패션기업도 아니고, 발렌시아가의 신상 스니커도 아닌,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모쪼록 즐겨주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