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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Mar 28. 2023

나는야 억울한 불평쟁이


문득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을 훑어보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거의 1년. 그전까진 일기 한번 제대로 써본 적이 없고 인스타그램에 아이들 사진을 올리며 적는 몇 자, 그게 나의 글쓰기 전부였다. 그런 내가 덜컥 브런치작가가 되어버리고 나름 열심히 써 내려간 나의 1년 치 글들. 난 지난 1년간 무슨 글을 썼을까. 별생각 없이 쭉쭉 내리다 보니 새삼 부끄러워졌다.

불평, 불만, 그리고 또 불평. 내 글의 8할은 불평이었다. 나름 행복하다고 써놓기도 한 인생이 뭐가 그렇게 억울해서 힘들다는 불평을 길게 여러 번 써놓았을까.



억울한 불평쟁이라면 우리 집 9살 첫째 아이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사건이 났을 때, 자신이 잘못하지 않아도 내가 부르는 이름 세 글자에 눈물부터 흘리는 아이다. 자기가 잘못해서 친구와 싸웠을 때도, 자신의 실수로 동생이 조금 다쳤을 때도, 뭔가 억울함이 가득한 눈으로 눈물만 뚝뚝 흘린다.

그 눈물의 이유를 나는 안다. 오해받을 것 같은 느낌, 실수일 뿐인 일로 혼날 것 같은 느낌. 빗나간 생각으로 인한 불안으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 그것은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걱정으로 인한 불안함이다.

나도 그렇다. 계속 사랑만 받고 싶어 불안하다. 내가, 나에게.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고 있다.


나에게는 몇 가지 일상기준이 있다. 집안일 미루지 않기, 하루에 두 번 이상 바닥 닦기, 아이들 자기 전에 설거지 끝마치기 등. 이런 고집스러운 기준을 정해놓고 달성하지 못한 날이면 뭔가 분한 감정이 올라온다. 내가 오늘 무슨 생산적인 일을 했냐는 비난은 덤이다. 분명 하루종일 바쁘게 지냈음에도.

나의 일터는 집이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올조차 나의 일거리로 느껴진다. 육아와 청소, 요리, 글쓰기, 취미생활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나에게 지쳐간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꼭 놓치는 나에게 실망하고.

아무도 나를 향해 질책하지 않고 떠밀지 않음에도 스스로 그 안에 가둬져 억울하다고 불평하고 있던 것이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글로 써놓고 보니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고집스러운 기준이지만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루를 보낸다는 거니까. 부지런히 움직여도 보고, 조금 불평도 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은 남편에게 굳이 물어봤다. 내가 불평이 많은 사람이냐고.


"아니."

"그래? 생각해 보니 내가 이것저것 다 불평만 하는 것 같아서."

"..."

"안 그런가?"

"응. 아니야."


다행이었다. 남편이 눈을 감고 있어서. 나의 올라가는 입꼬리를 들키지 않아서. 우리 집 무뚝뚝의 대명사는 역시나 단답형으로 대답해 주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지금 이대로 좋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지금도 불평한다. 나의 잠을 빼앗고 글을 쓰는 이 시간에게. 모두 잠든 새벽에. 그리고 내일 아침엔 졸린 눈 부릅뜨고 행복해하겠지. 글 하나 쓴 뿌듯함에. 브런치에 글 하나 발행하는 이토록 신나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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