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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Apr 03. 2023

낮엔 내가 울고 밤엔 남편이 울었다


첫째가 축구교실에 간 토요일 아침,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세은이 병원 데려가는 거야?"

"아니, 나만."

"왜? 세은이 안과 간다며."

"나만 가려고."

"어디 병원 가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혹은 몇 년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서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는 거냐고 재차 물어오는 남편의 질문에 겨우 대답했다. 정신과에 갈 거라고.

남편은 겉옷까지 입은 나를 식탁에 앉히곤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자기가 봤을 땐 전혀 우울해 보이지 않다고, 정신과 약에 부작용이 있는 건 검색해 봤는지, 그냥 요즘 조금 우울뿐 아니냐고 나를 달랬다. 그런 남편의 말에 더 무기력해졌지만 모른 체 걱정하는 남편에게 미소 지어줬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었다. 지금 행복하냐고, 살아가는 데 재미는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하는 질문. 남편은 항상 "그냥 사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 질문들에 내 답은 항상 심각했지만 잘 포장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의 남편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눈치였나 보다. 부랴부랴 우울증에 대해 검색해 보던 남편. 나를 집 밖으로 보내주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의 눈빛을 피해 둘째와 거실에 누웠다. 겉옷을 벗지도 못하고서.


남편은 어느새 내 옆에 누워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던 거냐고.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들이 아닌 척 대놓고 내 욕을 하기 시작했을 때? 겨우 사귄 마음 맞는 친구들을 엄마가 싫어했을 때? 알 수 없는 미래로 방황하던 고등학생 시절? 대학원에 가지 못해 절망했을 때? 그도 아니면 육아를 시작한 그날부터 지금까 계속이었다고 말해야 했을까.


토요일 아침 우리 셋은 거실에 누워 서로가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나의 사랑스러운 딸은 내 품에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고, 남편은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한참을 울었다. 입은 딸을 보며 웃고 있었고 남편의 팔과 내 머리카락은 끝도 없이 젖어갔다.


남편에게 털어놓고 나니 결국 말하고 말았다는 알 수 없는 절망감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눈가가 발개져서는 눈치도 없이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집을 나섰지만 병원엔 가지 못했다. 병원 입구부터 아이들과 보호자로 바글거려 간호사에게 말 붙이기도 힘들었고, 예약은 4주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정말 집 앞 동네 정신과였는데. 당황스러운 마음을 잡고 남편과 먹을 김밥만 덜렁 사들고서 집으로 돌아온 토요일이었다.




남편은 요즘 자다 말고 자꾸만 흐느낀다. 두 팔을 허공에 뻗고 하지 말라며 오열하기도 하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 눈도 못 뜬 채 서있기도 한다. 슬픈 꿈을 꾸는 건지, 많이 피곤한 건지, 일이 힘든 건지.

일요일 아침, 자신이 새벽에 또 울었냐고 물어왔다.


"몰라. 어젠 나도 일찍 자서 모르겠네. 왜?"

"일어났는데 눈가에 눈물자국이 있어서."

"오빠는 밤에 울고, 나는 낮에 우네."


농담이었는데. 하면 안 되는 거였나. 남편은 황당해하며 몇 초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나 무딘 남편에게 눈물 잠꼬대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 같다. 자신보다 내 눈물에 더 신경 쓰는 얼굴이었다.



일요일도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꼭 안았다. 힘내라는 격려를 따뜻한 손바닥으로 대신하며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봄은 자꾸 지나가는데 눈물에 젖은 나의 계절은 끝나지 않는다. 낮엔 나의 눈물이, 밤엔 남편의 눈물이 흘러 자꾸만 이어지고 만다. 언제부터였는지 언제까지인지 모를 슬픈 나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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