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해외 한 달 살이를 결심했는가

by 하랄라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다. "요즘 해외 한 달 살이가 늘고 있는 추세던데, 왜 그럴까요?" 사실 나는 4개월 뒤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이를 할 예정이다. 이미 비행기표를 끊었고, 실행을 위한 체크리스트도 만들어 두었다. '재밌을 것 같아서' 단지 이 마음 하나로 실행에 옮겼기에 교수님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생기기까지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 '나는 한 달 살이를 어떤 마음으로 결심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기대하며 비행기표를 끊었을까'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해외의 나갔을 때의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새로운 이벤트가 너무 즐거운 나머지 일기도 매일 쓰고, 새로운 경험 앞에서 두려움보다 기대가 앞서고, 내일은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는 나였다. 한국에서의 삶은 반복의 연속이다. 왜 시지프스에게 커다란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리는 일을 형벌로써 주었는지 이해가 간다. 반복되는 일상은 사람을 권태롭게 만든다. 학교에 다니며 내가 마음 다해 기대할 만한 이벤트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고,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내가 사랑했던 나의 모습을 다시 찾아보려 나는 태국으로 떠난다.


또한 타국의 어느 동네가 '지금 사는 나의 동네'처럼 익숙해진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내가 거주했었던 빅토리아와 토론토의 일부 지역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신림동에 느끼는 느낌과 비슷하다. 세 곳 모두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하고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대학 친구들은 방학이면 고향으로 내려간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결국 홈타운의 '편안함' 때문이다. 사람은 새로운 이벤트를 찾아 떠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편안함을 주는 익숙한 공간을 찾기도 한다. 해외 경험이 나의 세계를 넓혀준다는 말에는 이런 의미도 있지 않을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의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의 고향은 이미 캐나다에 두 곳에 있다. 태국 치앙마이는 나의 세 번째 마음의 고향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렇다면 왜 여행이 아닌 '한 달 살이'인가. 짧은 여행은 시간 제약이 커서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구글 평점이 높은 맛집을 검색하고 최적의 동선을 짜며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자유로운 여행자라고 할지라도 막상 음식이 입에 맞지 않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달 살이는 다르다. 맛없는 음식을 먹었다면 다음 날 다른 곳에 가면 된다. 흐린 날 방문한 명소가 아쉬웠다면 햇빛 쨍쨍한 날, 선선한 날에 다시 명소에 방문하면 되는 것이다! 넉넉한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현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자신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 보는 것이에요." 따지고 보면 여행은 자연적인 조건만 달라지는 것이지 사회적인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한 달 살이를 하려면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고, 도움받을 커뮤니티를 찾고, 내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탐색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가 생길 때 더 다양하게 반응을 보일 것이다. '여행을 하러 온 사람'과 '생존해야 하는 사람'은 입장이 다르다. 한 달 살이를 하게 되면 자연적인 조건뿐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까지도 달라지게 된다. 어떤 상황이 정말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인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한 달 살이, 걱정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삶에 대한 욕망으로 변한다. 그 자체로 내 권태로운 일상 속 충분한 활력이 된다.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달 살이는 시작하기 전부터 아주 의미 있는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