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해줬으면 하는 반응
하늘이가 태어난 지 벌써 100일이 넘었습니다. 본인의 성장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오늘은 위루관(수유를 위해 코나 입을 통해 위에 삽입되어 있는 관)을 자기 손으로 빼냈습니다. 다음 주에 소아과 외래 진료가 예약되어 있어 교수님과 상담 후에 빼내려고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녀석이 요즘엔 젖병만으로도 정량을 먹기 시작했거든요. 하늘이는 1.9kg으로 태어났는데 지금은 이것의 딱 2배인 3.8kg입니다. 아직까지는 큰 이슈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하늘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걱! 이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면 보통 말문이 막힙니다. 위로를 해야 하나? 축하를 해줘야 하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 역할을 바꿔서 상상해 보면 저라도 말문이 막힐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운증후군? 굉장히 충격적이죠.
우리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삶에 대해 알아갑니다. 서른이라도 넘으면 이 수수께끼 같은 삶에 대해서 드디어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사건'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제법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처음 보는 길이 나와요. 다른 길은 없어요. 우리는 촛불 하나 없이 캄캄한 그 길을 걸어가야 해요. 처음엔 겁이 엄청납니다. 근데 다른 길이 없으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발을 내딛습니다. 웃긴 건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또 빛이 보이고, 주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풍경들이 특별한 것이랄 게 없어요. 익숙합니다. 거기에도 사계절이 다 있어요. 꽃도 있고, 개울도 있고요. 어느 날은 쨍쨍하다가 어느 날은 비바람이 불기도 하고요. 이 길에 들어서기 전에 왜 그렇게 겁을 먹었나 싶은 생각에 머쓱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하늘이의 다운증후군 판정은 제게 그랬어요. 두려웠지만 막상 키워보니 별 거 없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원하느냐고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키우시는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답의 결은 다 비슷비슷해요.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세상에 온전히 수용되길 원해요. 우리는 그저 한 생명이 태어났음을 평범하게 인정받기를 원해요. 위로는 적절하지 않은 반응입니다. 나에게 이 생명은 축복인데 위로가 가당키나 하냐는 거죠. 따듯한 응원은 좋아요. 제 경우엔 진심으로 축하받고 싶더라고요. 부모도 부모지만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하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 나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반겨주기는커녕 슬퍼하고, 울고, 부정하면... 그때는 정말 이 아이들 딱한 아이들이 되는 거잖아요.
제가 하늘이의 소식을 전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준 사람들이 기억나요. 참... 눈물 나게 고맙더라고요.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제 딸의 존재를 누군가가 긍정해 주는 것이 말입니다. 한 번은 직장에 있을 때 축하한다는 카톡 메시지를 받았어요.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까 싶어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납니다.
생명은 신비이고, 그 자체로 신성하며, 그래서 축복입니다. 하늘이 사진 좀 봐주세요. 친구들이 자기 아기들 사진 보여줄 때 아이고, 저렇게나 좋을까 했는데 좋긴 좋네요. 솔직히 너무 귀엽잖아요. 내 자식이라 그런가? 아무튼 제 근황이 궁금하시다면 전 이렇게 잘 지냅니다. 그러니 마음껏 축하해 주셔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