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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9 – 하늘아, 너는 내 삶에 축복이란다

by 정현태

솔직히 하늘이를 키우기 전에는 '아기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여 창조하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이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역할도 따로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저는 Magda가 사회생활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면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주길 바랐습니다. 오해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는 가정을 돌보는 일이 몹시 고되고, 아름다우며, 또한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의 중요성은 남자가 바깥에서 하는 일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더 작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Magda와 제가 하나의 팀으로서 가정의 안과 밖을 구분해 책임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하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대가족을 이루어 살아 형제가 서로를 돌보았고, 공동체 문화 또한 잘 발달해 있어서 남의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육아 부담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공동체가 소멸되고, 가족 단위가 축소됨에 따라 육아가 온전히 부모 두 사람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전심을 다해도 쉽지 않은 일을 엄마 손에만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저야 길어봤자 하루에 9시간 정도 일하지만 Magda가 아기를 돌보는 일은 24시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사랑의 하나님이 분리를 강조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조화를 강조하셨던 겁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김새로 보나 생각하는 방식으로 보나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독립된 존재 같아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총체입니다. 남자라는 개념은 여자라는 개념이 있어야만 성립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여자라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현실 속에서도 그렇지만 관념적으로도 서로에게 반드시 기대 있어야 온전히 서있을 수 있습니다. 즉, 남자과 여자는 날실과 씨실처럼 하나의 총체를 구성한 두 개의 요소일 뿐 분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능력이 닿는 대로 Magda를 도와 하늘이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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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를 돌보는 우리


우리나라에는 '육아 전쟁'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이 전쟁과 같음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하늘이가 생기기 전에는 이 표현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키우는 것이 어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전쟁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하늘이가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Magda는 조카들을 돌본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능숙하지는 않았고, 저는 육아 경험이 전무한 초보 아빠였습니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하늘이를 돌봤지만 그 과정이나 방식이 상당히 어설프고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신생아를 둔 부모라면 공감하겠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하늘이는 3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총 8끼를 먹어야 했는데, 위루관으로 수유하다 보니 매 끼니마다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다크 서클은 콧구멍을 한참 지나 젖꼭지까지 내려올 지경이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날에는 내면에 억눌려있던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나 좀 챙겨!’하고 소리치는 듯했습니다. 일평생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저로서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일이 무척이나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쳐 쓰러져 있는 저에게 Magda가 물었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이를 갖지 않을 거야?" 저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기에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질문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운 답변을 내놓은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급하게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방금 한 말 취소야. 시간을 돌이킬 수 있더라도 나는 하늘이를 만나겠어. 우리가 힘들다고 규정하는 모든 일들을 삶의 축복이라고 여기고 감내했을 때,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청난 행복으로 돌아와. 아마 하늘이도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거야." 사실은 이미 그렇습니다. 하늘이, 정말 귀엽거든요.


하늘이가 퇴원하여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Magda와 저는 환상적인 팀워크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들에 루틴이 생겼고, 이에 따라 모든 일들이 효율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하늘이가 젖병을 빠는 힘이 나날이 강해져 어느 순간에는 위루관으로 먹는 양보다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양이 더 많아졌습니다. 매번 위루관으로 수유를 하는 일이 굉장히 번거로워서 다음 검진 때 교수님과 상의 후에 위루관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검진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하늘이가 발버둥을 치다가 위루관을 자기 손으로 빼버렸습니다. 위루관이 빠지면 어쩌나 매일 걱정했던 터라 당황한 저와는 달리 하늘이는 태연하게 호기심 많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위루관을 다시 넣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이 조금 되었지만 일단은 그냥 지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젖병으로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더라도 더 자주 수유하면 큰 문제는 없을 터였습니다. 오히려 입에 달려있던 거추장한 관이 사라지자 하늘이는 예전보다 더 힘차게 젖병을 빨았습니다. 저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하늘이의 입가를 빤히 바라보며 그곳에서 역동하고 있는 삶의 의지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단어로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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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가 혼자서 위루관을 빼낸 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하늘이가 태어난 지 432일이 되는 날입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하늘이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흔한 배앓이를 한 적도 없고 감기에 걸린 적도 없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이는 괜찮다고 합니다. 또 이 아이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갑상선 호르몬도 정상 범위 내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유 65ml도 한 번에 못 먹었던 하늘이는 이제 150ml 정도는 거뜬히 한 번에 먹습니다. 이유식을 시작한 지도 조금 되었습니다. Magda가 건네는 수저를 날름날름 잘 받아먹는 하늘이를 보고 있으면 이게 행복이구나 싶습니다. 앉혀놓으면 이제 제법 중심을 잘 잡고 버팁니다. 아직 네 발로 기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싶은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귀여웠는데 요즘에는 슬슬 귀가 따가워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견딜 만 한데 위층과 아래층 이웃들께는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낯을 가리기는 하는지 집에 손님이 오거나, 밖에 나가면 얌전히 있는 편입니다. 저는 요즘 하늘이가 언제까지 더 귀여워지나 지켜보는 중입니다. 하늘이의 귀여움은 출생 이후로 꾸준히 우상향 해왔습니다. 한 존재가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는 데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저는 제가 아기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은 날에도 방긋 웃는 하늘이를 보면 바로 기분이 풀립니다. 아참, 저는 잘 모르겠는데 Magda가 말하길 하늘이의 고집이 아주 세다고 합니다. 저를 닮아서 그렇다네요. 제가 보기에는 Magda를 닮아서 그렇습니다. Magda도 한 고집 하거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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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최신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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