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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말하는 것보다 강력한 건 없다.

by 정현태

스레드에서 아주 역겨운 게시물을 봤다. 게시물은, 산전 검사에서 뱃속의 아기가 다운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아기를 낳을 것인지, 지울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게시물을 작성한 본인은 자신과 아이의 삶이 걱정되어 지울 것 같다고 말했다.(참고로 작성자는 40대 남자였다.)


이 게시물이 역겨운 이유를 나는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지운다'는 말이다. 이 표현이 낙태나 중절수술을 대체하는 말로 오랫동안 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표현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군집을 이뤄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무참히 밟아 죽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적절한 시기가 되면, 그때 그 행동이 어렸기에 할 수 있는, 그래서 이해받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운다'는 표현도 성숙하지 못한 표현이다. 30~40대가 되면 그 낱말이 가진 서늘한 이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한 생명을 '지운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는 '아이의 삶이 걱정되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서 인간의 지독한 자기중심성과 위선을 동시에 느낀다. 대부분이 자신의 삶이 걱정되어 장애아를 낳지 않으려 한다. 아이의 삶도 걱정되겠지만 그 비율로 따지면 9대 1 정도 일 것이다. 직접 경험했든 아니든,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있다면 '아이의 삶이 걱정되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고민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장애인을 키우는 삶이라니. 그 고민에 아이의 삶이 낄 자리는 많지 않다. 인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장애아를 키우는 자신의 삶의 양상을 이리저리 살피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쓰게 된다. 그러다 다른 사람한테 말할 기회가 생기면 위선 한 스푼을 섞어 '아이의 삶이 걱정된다'와 따위의 말을 한다.


(혹시나 산전 검사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들고서 여기까지 오신 예비 부모가 있으시다면, 아이의 삶은 걱정하마시라. 다운증후군을 가진 당사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살아간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가족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다운증후군 아이를 통해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로 나아간다.)


이 게시물에 달린 대부분의 댓글은 아이를 포기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었다. 세계적인 흐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나도 댓글을 남길까 하다가 곧 마음을 접었다. 의미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주제만큼은 입이나 글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말하고자 한다. 내가 하늘이를 비롯한 나의 가족과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누군가는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


쉽고 편한 삶은 없다. 나는 쉽고 편한 삶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그런 삶을 거머 줬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이상향에 가까워진 사람들은 힘겹고 불편한 삶을 추구했다. 의미 있는 것은 뭐든 쉽지 않다. 나는 쉽고 편한 삶이 아니라 의미로 충만한 삶을 원한다. 나는 욥처럼 이 시련을 잘 견뎌내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쓰일 자신이 있다. 나는 앞으로 내 삶으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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