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주서영은 문 앞에 우뚝 선 채로 엉망진창인 집안을 멍하니 바라본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지?’
머리속이 복잡하다. 소파까지 간신히 걸어가서 몸을 던지듯 눕는다. 눈을 감고 오른손을 이마에 얹으며 생각에 잠긴다.
‘나 오전에 임형석한테 실수한거 없지?
연락처를 내걸 주고 올게 아니라 내가 받아왔어야 했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냐, 그게 문제가 아니지. 다른 스케줄이 잡혀 있으면 안되는데. 늦어도 10월에는 드라마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주서영은 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바로 팀막내에게 전화를 건다.
“지석씨 나에요. 임형석 배우 알죠? 매니저 통해서 연락처 알아내서 내게 알려줘요. 급하니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 “
일단 좀 씻자.
주서영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곧 전쟁을 치뤄야하니 갑옷을 입어야 한다. 임전무퇴다.
‘안녕하세요. 임형석 배우님. 주서영 pd입니다. 이번에 김인아 작가님과 새로운 드라마를 같이 하게되었습니다. 남주 캐스팅 관련하여 연락드렸습니다. 문자 보시고 시간되실 때 연락바랍니다.’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 연락해야 하지만 임형석은 배역 선택이 까다롭고 출연 작품을 직접 선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연작마다 흥행이니 소속사도 임형석의 작품 안목을 믿고 맏기는 편이다. 일단 임형석이 ok만 하면 나머지 계약 절차는 소속사와 진행하면 된다.
임형석에게 문자를 보내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누우니 아침에 만났던 임형석이 떠오른다. 무심하게 내 쪽으로 걸어오던 모습.
어느새 다가온 하얀 피부,
차가운 눈빛,
날카로운 콧날,
적당히 촉촉한 입술.
그리고…
아름다운 검은머리…
‘어머! 나 뭐하는거니?
너 지금 임형석한테 반한거야? 그런거야?’
주서영은 누가보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벌개져서 머리를 흔든다.
‘미쳤구나 주서영! 딱 한 번 봤어!
세상에 그 정도 미남은 널렸어!
잘생긴 남자배우 한두번 봐?
진짜? 진짜 널렸어?
그렇게 설레게 하는 얼굴은 없던데… 특히 그 입술…
아놔~ 너 미쳤니 주서영? 정신차려!’
주서영은 생각을 멈추려는 듯 두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무래도 욕구불만인가 싶다.
마지막 키스를 한지가 오래돼도 너~~무 오래됐다.
‘아, 배고파.’
갑자기 허기가 진다. 쿠팡이츠를 열어 뭘 먹을까 한참 고민 후 오늘은 피맥이다 싶어 피자를 주문한다. 술먹은 다음날은 역시 피자지. 피자 도착 전 하이트 캔부터 냉장고에서 꺼내서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넷플릭스를 켜고 최애 영화인 ‘인터스텔라’를 찾는다. 인터스텔라는 러브스토리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 이야기다. 모든 것을 버리고, 어쩌면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텐데도 미지의 우주로 날아가는 이유는 각자의 사랑을 위해서다.
오염된 지구 대신 사랑하는 가족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딸을 남겨두고 우주로 떠나는 쿠퍼,
사람이 그리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에서 살 수 있는 행성이라고 거짓말을 한 만 박사,
그런 만 박사를 사랑해서, 사랑하는 그를 보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아멜리아,
그 어느 하나 이해 안되는 인물이 없다.
저게 진짜 사랑이지.
영화를 볼때마다 거대한 우주 장면과 그들의 사랑에 먹먹하다. 나는 얼마나 작은가. 이 지구에서의 내 고민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작가가 원하는 남자 배우 하나 드라마 주연으로 출연시키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주서영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띵동 -'
피자왔다! 오늘밤은 다 잊고 제대로 먹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