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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J Jan 26. 2024

피아노와 단짝친구가 되다

어떤 이야기든 해도 괜찮아

 나의 피아노 사랑은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상대음감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유치원에서 음악을 듣고 오면 집에 있던 피아노를 따라 쳤었다. 엄마는 처음에 천재인줄 알았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상대음감은 흔하다고 한다. 그렇게 8살 때 엄마가 피아노 레슨을 시켜주셨다. 레슨을 받아보니 나는 듣고 따라 치는 것에는 특화되어 있었지만 악보 읽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레슨 선생님께서 수첩에 사과 모양을 그려 악보 읽기 횟수를 표시해서 숙제를 내주셨는데 그 숙제가 그렇게 재미가 없었다. 숙제를 하기 위해 앉은 피아노 위에서는 그냥 마음가는대로 피아노를 치거나 이전에 들었던 음악들의 멜로디를 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렇게 한참동안 피아노치기 놀이를 한 뒤 억지로 사과 채우기 숙제를 했고, 가끔은 숙제를 하지 않고 사과만 채워 넣기도 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에는 피아노와 재미있는 놀이를 함께하는 친구처럼 지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피아노를 칠 시간은 거의 없었고 그렇게 피아노와 점점 멀어졌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께서 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피아노를 팔자고 결정하셨고 갑자기 피아노가 사라지게 되었다. 나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 결정이라 속상했지만 몇 년 동안 피아노를 거의 손대지 않았던 나는 크게 할 말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외국에 있던 큰이모께서 한국에 오셨는데, 쓰지 않는 야마하 키보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피아노가 없어져서 속상하고 허전한 와중에 그 키보드가 너무나 가지고 싶었다. 엄마아빠를 졸라서 그날 밤에 큰이모 댁에 가서 키보드를 가져왔다. 헤드폰을 쓰고 연주할 수 있어 밤에도 칠 수 있고, 이전의 아날로그 피아노와는 달리 여러 가지 음색도 가지고 있어서 다시금 피아노에 대한 사랑이 커져갔다. 초등학교 때 했던 방식으로 나는 내가 치고 싶은 대로, 또 그 당시 빠져있었던 이루마와 히사이시조의 음악들의 멜로디를 치며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고3, 재수생활을 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속마음을 피아노에 풀어놓으며 그 어떤 이야기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수험생활을 시작하며 숱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피아노에게 했고, 공부를 그만두고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음악에 시간을 많이 쏟기로 결심했던 2015년에 이 음악들을 퀄리티 좋게 녹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전자피아노를 컴퓨터에 그대로 옮기는 방식인 midi를 배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1000여곡들을 만들어 파일로 저장했다. 지금도 피아노는 내 방 한켠에서 언제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고마운 단짝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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