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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J Feb 03. 2024

여기 계속 있다간 암에 걸릴 것 같아..

잠시 다녔던 회사 이야기

  20대 중반 무렵 어느 정도 완성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시험 삼아 구직사이트에서 구인을 하는 음악 제작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 영상음악, 효과음 외주작업과 성우 녹음을 하는 한 회사에 면접을 보고 그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게 된다. 당시 나는 회사 취업 경험이 전무 했으며, 음악관련 일만 할 수 있다면 뭐든 좋다는 생각에 구두계약만으로 입사를 결정했다. 열정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급여도 작았지만 급여와는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일을 할 수 있음에 너무나 기쁘고 설렜다. 아르바이트로 했던 과외도 그만두고 나는 음악에 올인 할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면접을 봤을 때, 나 말고 동료가 2명 정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출근을 하니 다른 두 분은 일이 있을 때만 출근하고, 상시 근무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어서 회사 대표님과 나만 있을 때가 많았다. 회사 대표님도 음악을 만드는 분이어서 내가 작업하면 대표님이 검수해서 외주업체에 넘기는 식으로 일이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실 이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은 한 달 반 정도로 아주 짧다. 하지만 이때를 떠올리는 일은 지금도 쉽지 않고 떠올릴 때면 마음한구석의 응어리가 느껴진다. 


 회사는 큰 작업실 형태로 이루어져있었다. 레코딩룸, 작은 작업실 2개 형태로 되어있었다. 내 자리는 입구 쪽에 인포데스크처럼 되어있는 곳에 배정 되었고, 자리에 건반과 컴퓨터가 있었다. 이제 여기서 건반으로 곡을 만들고 주어진 효과음들을 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간 후 하루쯤 지났을 때인가, 일이 있을 때만 출근한다는 한 동료분이 출근하셨다. 대표님과 동료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자세한 상황은 모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내가 있었던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3번 정도 얼굴을 봤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은 대표님과 나만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대표님 기준에서 무언가 조금이라도 다를 때는 귀가 아플 정도로 고함을 지른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높은 언성이 나에게 향했다. 하루에 10번 정도 그런 고함을 당하니 귀가 정말 아프고 원래도 약하던 허리가 너무 아파왔다. 나중에 땅콩회항 사건을 보며, 내가 겪은 것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2~3주 정도 지나자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고, 이대로 있다가는 암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나도 나중에 이런 사람이 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나는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회사에서의 일은 음악, 효과음작업들, 레퍼런스 찾기, 녹음 등의 음원 제작관련 업무를 했는데 나름 배우는 재미도 느꼈고 일 자체는 괜찮았다. 그 외의 일도 많이 했다. 은행업무, 고객사 사은품 포장, 시트지 붙이기, 가구조립 등 소수 회사여서 잡무가 많았다. 그런데 점점 내가 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지고, 새롭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며 더 책임지는 일이 많아지기 전에 나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주6일 밤9~10시정도까지 근무했었다.     


 한 달 반 정도가 지나자 허리가 너무 아파왔다. 그 시점에 나는 맡은 외주업무들이나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일들이 거의 완료된 시점이어서 이때가 아니면 정말 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나오게 됐다.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 한동안은 무기력하고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회사 공포증도 생긴 것 같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잘 못하는 편이다. 혼자 해결한 다음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요약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힘들었던 시간을 잘 털어내는 것도 중요한데, 아직 제대로 털어내지 못해서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때를 떠올리기가 힘든 것 같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서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대표님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험담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안 좋은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크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또 언뜻 들었을 때 가족들에게는 잘하려고 노력하셨던 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도 상사에게 자신이 지금 직원들에게 하는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것도 같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과 안 좋은 상황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 참 힘들게 느껴져서,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상황에서는 자꾸 도망가려 하는 것 같다. 항상은 어렵겠지만 최대한 서로 이타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다.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생각했다. 실력을 더 키워서 대기업에 입사하면 이런 일은 덜 겪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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