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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평등을 말하고
UX는 차별을 묻는다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 멈춰야 했던 사람들

올해 대선은 유난히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선거입니다.
장애인 이동권, 혐오 표현, 소수자 인권 같은 주제가 각 후보들의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사회'라는 말도 자주 들려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술과 제품, 그리고 서비스 속에서도 이런 작은 차별과 조용한 배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배척하거나 차별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UX는 '일반 사용자'를 기준으로 삼아 설계됩니다. 이러한 설계는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상황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불편함, 심지어는 완전한 배제로 이어집니다.



디지털 일상 속의 보이지 않는 장벽

이제 여론조사 전화는 끝났지만, 선거 기간 내내 하루가 멀다 하고 ARS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ARS 여론조사는 “감사합니다. ARS 조사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음성 안내에 따라 번호를 누르면 자신의 의견을 손쉽게 전달할 수 있는 구조 입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참여조차 청각장애인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시스템 설계에서 이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권리는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맙니다.


비단 여론조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금융기관이나 공공서비스의 ARS 기반 인증 방식 역시 동일한 장벽을 만듭니다. 청각장애인은 전화를 통해 전송되는 인증번호를 들을 수 없기에 서비스 자체에 진입조차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인증 서비스를 도입해 유선 전화가 어려운 고객도 전화 대신 문자로 본인 확인이 가능하도록 UX를 보완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모두를 위한 UX'라고 믿고 있는 시스템들이 사실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곤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여러 후원 플랫폼들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가입과 기부는 간편하게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탈퇴는 오직 유선 전화로만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청각장애인이나 전화 사용이 어려운 사용자에게 이 구조는 ‘그만둘 수 없는 UX’를 만들어냅니다. 기부를 시작할 자유는 있지만, 중단할 권리는 UX 설계로 제한된 셈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서비스는 참여를 유도하는 것만큼, 멈출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합니다. UX는 단지 행동을 유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율성을 보장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UX_후원탈퇴.png 유니세프의 후원 탈퇴 방법



색상에 의존한 디자인의 한계

디지털 제품에서는 관습적으로 ‘비활성화’ 상태의 버튼을 회색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UI 디자인에서 굳어진 표현 방식으로, 활성 상태는 진한 색, 비활성 상태는 흐릿한 회색으로 직관적 차이를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이 관습적인 방식이 색각 이상자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정보 전달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활성화된 버튼이 회색과의 명도 차이가 크지 않다면 두 버튼의 상태를 구별하기 어려워집니다.

UX_버튼.png


단순히 색상만 다르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사용자에게 직관적인 신호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색상 간의 '명도 대비'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텍스트, 테두리, 아이콘 등의 보조 신호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UX 설계에서 색은 강력한 시각적 언어이지만, 색만 사용하는 것은 아쉬운 디자인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는가’를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색상의 감성뿐 아니라 시각적 명료성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는 게임 UX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일부 게임에서는 색상의 차이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색각 이상을 가진 사용자에게는 정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에서는 한때 색상만으로 특정 패턴을 넘겨야 하는 기믹이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색각 이상 사용자들에게 정보 인식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업데이트를 통해 해당 패턴의 모양을 각각 다르게 설계하여 색뿐만 아니라 형태적 차이로도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개선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변경이 아니라, 더 많은 사용자가 게임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든 포용적 UX 개선이었습니다.


이처럼 명도 차이와 시각적 다중 신호의 병행은 UX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핵심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디지털이든 게임이든, 버튼이든 사용자가 보는 방식은 모두 다르며, 그만큼 설계 방식도 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색각 이상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용자에게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좋은 예시입니다.



물리적 환경에서의 접근성 문제

UX는 화면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물리적 환경에서도 ‘사용자 경험’은 명확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회전식 손잡이는 손의 회전 동작이 전제되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손이 불편한 사람, 한 손으로 짐을 든 사람에겐 문 하나를 여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그래서 눌러서 여는 손잡이, 자동문, 발로 여는 문 등의 방식이 도입되었고, 그 작은 구조 하나가 누구에게는 삶의 자율성을 되찾아주는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UX는 클릭이나 스와이프 같은 제스처뿐 아니라, 도어 핸들 하나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UX_문손잡이.png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향하여

이 글에서 다룬 사례들은 모두, UX가 '일반적인 사용자'만을 기준으로 설계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나'라는 말이 사실은 소수자를 배제한 평균값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설계가 아니라, 모든 사용자가 불편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철학입니다. 그리고 이 철학은 단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UX 디자이너의 일상적인 판단과 실무 설계에 깊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UX는 단지 세련되고 빠른 화면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태도이자, 책임 있는 설계의 실천입니다. 돌리는 손잡이를 눌러 여는 것으로 바꾸는 일처럼, 색상 하나에 더해 명도를 고려하는 일처럼, 음성 인증에 문자 옵션 하나를 더하는 일처럼,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는 UX 디자인이 됩니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디자인은 더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더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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