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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증권의 옵션거래는
왜 비판 받을까

쉬움이 위험을 부른다.

각자의 직업 윤리

의사는 환자에게 불필요한 시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공정하게 대해야 하고, 기자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술가는 타인의 창작물을 도용하지 않아야 하죠. 이처럼 모든 직업에는 각자의 윤리가 존재합니다. 직업윤리란 단순히 법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그 직업이 사회 속에서 맡은 역할에 따라 지켜야 할 도덕적 원칙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의 윤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하지 않게 막는 것’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214% 수익의 유혹

토스는 “누구나 쉽게 금융을 한다”는 철학으로 출발했습니다. 송금, 카드 관리, 투자 등 복잡했던 금융 경험을 직관적이고 단순한 인터페이스로 바꿔냈죠. 그 결과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만든 토스는 증권에서도 그 편의성을 바탕으로 해외 주식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쉬움’의 철학이 새로운 단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생겼습니다. 바로 최근의 ‘옵션 거래 UX’입니다.


토스증권은 이번 서비스 출시 전, 사용자들이 옵션 거래를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모의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안전장치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그 체험의 방식이었습니다. '엔비디아가 5% 오르면 옵션 가격은 214% 오른다.' 같은 문구가 등장하며, 초고위험 금융상품을 마치 단기 고수익이 가능한 쉬운 투자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옵션 거래는 일반 주식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한 번의 하락으로 원금 전액을 잃을 수도 있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토스는 이 상품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화면은 깔끔했고, 플로우는 단순했으며, 진입 과정에는 큰 저항이 없었습니다. 편의성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UX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금융상품에서 UX의 본질은 사용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를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편의성이 높아질수록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은 낮아집니다.


토스증권은 “서비스 이용 전 상품 설명서와 교육 콘텐츠를 제공했고, 주문 수량 제한과 실시간 리스크 안내 등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토스의 해명은 형식적으로는 타당합니다. 설명서를 제공했고, 제한을 두었으며, 정보 제공도 했습니다. 그러나 UX는 법적 면책이 아니라 심리적 설계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UX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해명은 근본적인 문제를 피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거래를 시작하기 전의 안내문’이 아니라 ‘거래를 진행하는 중의 인터페이스’에서 행동을 결정합니다. 위험에 대한 설명이 아무리 길어도, “5% 상승 → 214% 수익” 같은 시각적 피드백이 주는 쾌감은 그 모든 텍스트를 무력화시킵니다.

인간의 인지는 합리보다 직관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UX는 그 직관을 조정하는 언어와 시각의 조합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위험을 텍스트로 설명했다고 해서 UX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은 설명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설계로 제어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남의 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나 자문가는 법적으로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전 재산을 위험한 투자에 넣는 일엔 아무런 자격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자유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이 파산하면 가족이 무너지고, 빚이 사회로 전이되며 결국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따라서 개인에게 이런 위험한 상품 서비스를 안내하고 제공하는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쉬운 언어는 위험을 숨긴다

이 문제는 토스증권이 과거에도 한 번 겪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서비스 명칭을 ‘미수거래’‘외상거래’로 표현해 투자자 혼란을 초래한 결과 금감원의 시정 요구로 미수거래로 고쳐졌습니다. 당시에도 핵심은 같았습니다. 금융 용어를 대중적 언어로 쉽게 바꾸려다 ‘위험의 본질’까지 희석시킨 것입니다. 언어를 바꾸면 UX가 바뀌고, UX가 바뀌면 인식이 바뀝니다. 디자이너가 ‘쉬운 언어’를 선택할수록 사용자는 ‘쉬운 상품’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사용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위험은 가려지게 됩니다. 진정한 사용자 보호란, 위험을 숨기지 않는 디자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옵션 거래처럼 고위험 금융상품이라면, 그 UX는 매끄러워서는 안 됩니다. 진입은 느려야 하고, 경고는 커야 합니다. 불편함은 때로 안전의 마지막 장치입니다.



사용자 행동에 대한 책임

UX/UI의 목표는 단순히 사용을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사용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윤리적 행위입니다. 좋은 UX는 사용자의 행동을 돕는 동시에,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클릭률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순간, UX는 설계가 아닌 조작이 됩니다.

금융을 쉽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쉬움이 사람을 이해 없이 참여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UX가 아니라 위험을 포장한 마케팅입니다. 토스의 옵션 거래 UI는 접근성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사용자에게 주어져야 할 경계심을 제거했습니다.

디자인은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자, 행동의 윤리를 묻는 철학입니다. 금융의 UX는 사용성을 높이는 일 만큼 사용자의 안전도 지켜야 합니다. 토스의 옵션 거래 UX는 '누구나 쉽게 한다'는 슬로건을 '누구나 쉽게 잃을 수 있다'는 결과로 바꾸고 있습니다. 좋은 UX란 사용자를 유혹하는 UX가 아니라, 사용자를 보호하는 UX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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