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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Oct 18. 2022

뿌린 마음이 돌아오기까지

친구가 내게 말한다.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   복이야.


 말에 멋쩍어 다들  정도의 애정은 받고 있지, 나는 그걸 매번 곱씹는  뿐이고. 라고 답했다. 친구가 인상을 쓴다. 아니,  주위에는 그 정도의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건 특별한 복이지. 하고 다시 한번 말한다.


알고 있다. 내 복인 것을. 하지만 나라고 매번 사랑만 받으며 자란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조금 모자란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지켜본 증인으로 엄마가 있다.


이상하게도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지 않았다. 저 사람은 더 좋은 게 있네, 좋겠다. 늘 그렇게 끝났다. 대신 비슷한 노력을 하고도 더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사람은 부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부러움이 다였다. 못나게도 화살을 늘 내게 돌렸다. 내가 더 노력을 안 해서 일까. 나는 느림보 거북이라, 저 사람보다 더 잰걸음으로 걸어야 따라잡을 수 있는 거구나, 태생이 다른 거네, 하고.


나는 쉽게 양보하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든 말든. 내 몫으로 주어진 간식을 누군가가 쳐다보면, 너 먹을래? 하고 주는 사람. 착한 척이 아니라, 그냥 내가 그랬다. 상대방이 맛있게 내 몫의 간식을 먹는 것을 보고, 행복했으니까. 좋은 것이 운 좋게 내 손에 들어와도, 친구가 필요하다 하면 주곤 했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게 더 좋으니까. 그 행동들은 쌓이고 쌓여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언젠가는 행복으로 또 언젠가는 상처로 돌아왔다. 이 행동이 혹시 모자란 것인가 라고 인지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된 후였다.


친구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 케이크에 불 안 붙였어? 그럼 해야지! 하며 잘 떨지 않는 호들갑을 떨며 밤늦게 케이크를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모두의 생일을 챙겨주고는 정작 내 생일에 빈손으로 돌아오던 어린날도, 메신저 알림이 뜨지 않으면 모두에게 잊혀지는 날도, 사는 게 바빠 축하받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그것을 보며 한 소리했다. 주변을 그렇게 살펴놓고, 보살핌 받지 못한다고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상대의 웃는 얼굴이, 가끔 내가 있어서 다행이란 말이, 손에 꼽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말이 내게 올 때면, 다시 나는 무엇을 상대에게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음에는 더 큰 것을, 다음에는 더 필요한 것을 줘야지. 그러려면 계속 널 바라봐야지. 다시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여전히, 나는 내 몫을 챙기는 것보다 남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 행복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내가 뿌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며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게 그날의 풍경을 보내며 내 안녕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며칠 전 친한 동생이 말한 것처럼, 내가 뿌린 다정들이 이제야 피어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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