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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Oct 22. 2022

나도 알아, 내 복인 거

생일은 나를 제일 모르는 최측근과 함께했다. 내 글을 읽지 않는 최측근. 남 눈치 많이 보는 내가 눈치 보지 않고 글 쓰길 바라기에 내 글을 읽지 않는 최측근. 근데 그거 알아? 너 빼고 이제 다 읽는 것 같기도 해. 그래서 나는 이제 비밀로 하는 걸 포기했어. 그냥 응원을 받기로 했지.


그날 만나자 하지 않았음에도, 날짜를 비워둔 친구의 일정을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갔다. 차에 타자 친구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나의 아이스 라테가 보였다. 이거 사느라 늦었구나. 원래는 맥드라이브에 들려 맥모닝도 사는 거였는데, 차가 너무 많았다고. 그런 건 됐어. 물론 내가 아침에 맥모닝 먹는 거 좋아하긴 하지만. 너는 내 글 안보지만, 나 사실 내 아이스 라테를 묻지 않고 사 오는 것에 다정이라고 적은 적이 있었어,라고 고맙다는 말 대신 그 문장을 읊었다.



몇 시간을 달려 포천의 유명 약과 집에 가서 줄을 서 약과 두팩을 샀다. 내가 너한테 약과 좋아한다고 말했던가?라는 물음에, 아니 하지만 한 번쯤 네가 이것을 먹고 싶어 했을 거라는 건 알지, 하고 친구는 답했다. 맞아. 사실 한번쯤 먹어보고 싶었어. 당근 마켓에서 검색도 해봤었어. 그렇게 먹은 유명 약과는 진짜로 생각보다 맛있었다.


친구는 나를 빨리 차에 태웠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고. 이거 런닝맨인가? 계속해서 무언가 미션이 있는 거야? 나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또 끌려갔다. 간장게장집에 도착한 뒤, 내가 너한테 게장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또 물었다. 언젠가 우리가 먹자고 했던 적이 있단다. 세상에나, 내가 까먹는 기억도 있네.  


게장을 먹고는 무슨 릉에 갔다. 나는 여기 이런 릉이 있는지도 몰랐어. 자기도 몰랐단다. 그냥 우린 수목원에 가기 위해 주차를 한 것이라고. 그리고 친구가 이끄는 대로 열심히 걸었다. 생각보다 걷는 길이 멀어 중간에 한번 컨디션 이 떨어졌다. 숨이 가빴다. 친구는 내게 쉬었다 갈까? 했지만, 나는 한번 멈추면 거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 싫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좋은 계절에 땀 흘리며 수목원에 갔다.


사람이 없는 자리, 앞에 흐르는 계곡이 있는 덜 더운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아니, 앉았다. 친구가 누워봐,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잘 듣는다. 누웠다. 하늘 좀 봐. 그래서, 하늘을 봤다. 친구가 자신의 선글라스를 내게 끼워줬다. 훨씬 보기 편하지. 응. 친구는 잠들고, 나는 계속해서 하늘을 봤다. 언제 까지 봐? 구름 지나가는 거 보라며. 구름 한 스무 번 지나간 거 같은데.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도 같이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친구는 다시 나를 눕혔다. 너 누가 머리 만져 주는 거 좋아해? 아니? 나 몰라 사실. 누군가 내 머리를 그렇게 만져준 적이 없는데. 친구는 내 머리카락을 쓸었다. 자신은 누가 머리 만져주는 거 좋아한다고. 너는 누가 만져줘? 나는 그게 궁금했다.


사실 그날 나 머리 덜 말리고 왔는데, 걱정이 되면서도 친구가 쓰다듬는 머리카락 사이 손길을 그냥 두었다. 그러면서 친구는 머리를 이만큼 자르자 했다. 나는 자르고 싶지 않아서 얼버무렸다. 그리고 친구는 내 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 주위 사람들은 참 다정해. 복이야. 물론 네가 잘해서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거 복이야.


친구의 말에 혹시 부러움이 담겼나, 싶어서 아니야. 다 비슷해. 그냥 나는 내게 오는 애정들을 미련하게 곱씹는 거지, 하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단호하게 비슷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 그럼 내 복. 하고 이야기를 급하게 끝냈다.


친구가 사 온 쿠키에 신기하게 생긴 초를 꼽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이렇게 생긴 초도 있네. 너 MZ세대다 하면서. 그리고 분명 선물 사면 너한테 혼날 것 같아서, 라는 변명을 하며 주섬주섬 꺼낸 옷 두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색상 선택을 못해서, 그리고 세일을 해서 두 개를 샀는데 같이 입자고. 내가 진짜로 화낼 것을 알기에 친구는 변명의 개수를 계속해서 늘렸다. 나 요즘 진짜 필요한 거 없고, 가지고 싶은 것도 없는 거 알잖아.


그렇게 옷을 사이좋게 나눠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카톡으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좋은 날이 되었으면 했는데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다음번엔 네가 그냥 가자해도 쉬다 가는 시간을 마련해볼 거라고. 그리고 나는 그날이 끝나기 전에 이야기했다. 나 알아. 그거 다 내 복인 거. 그리고 네가 제일 큰 나의 복덩이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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