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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Oct 25. 2022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왜 나한테 저렇게 이야기하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 나와 같지 않음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바라보았던 시간들. 다행히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은 크면서 조금씩 정리되었고, 이제는 많은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또 이해하려 노력한다.


대학 시절 우리는 함께였다. 13명이서 다 같이 모여 수강신청을 하고, 한 명이 들어오지 못하면 새로 들을 강의를 찾아 모두 함께 옮겼다. 그게 힘들면 그룹을 두 개로 나누어 신청했다. 그렇게 몰려다니기 좋아했다. 13명이나 되니, 매달 누군가의 생일이었고, 그래서 매 달 파티를 했고,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밤새도 깨워줄 사람이 있었고, 방학이 되면 함께 여행을 다니기에 바빴다. 학교에 아무 시간에 가도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수업을 듣다가도 배고프다 하면 같이 수업 째고 밥 먹으러 나가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학교 생활에 안정감을 주었다. 나의 동기들이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각자의 경조사를 챙기면서 떠들썩했던 우리의 동기 카톡방은 점차 조용해졌다. 대학시절 새벽까지   자고   없이 네이트온으로 떠들  아이들은 이제 없었다. 그나마 연말 모임은  하는 편이었는데, 그것도 해가 바뀔수록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각자의 이유가 생기며 점차 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모이지 않는 모임은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도  동기방은 유지되었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무도  방을 나가지는 않았다. 암묵적 룰처럼.


하지만, 어느 날 한 명이 나갔다. 삼수생인 동기 오빠였는데, 우리는 그 흔적을 보고 꽤나 섭섭해했던 것 같다. 아무 말도 없이 그 방을 나간 것에 대하여. 차마 물어볼 용기는 없고, 그냥 서운해만 했다. 오빠에게 우리가 이제 아무것도 아닌가 보지. 오빠에게 더 중요한 게 생겨났나 보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멋대로 우리끼리 받은 상처만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십 대의 시끌벅적한 삶을 지내고 있을 때 그는 삼십 대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내가 서른 살을 넘기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저리 치이고, 여기저기 데이면서. 우리보다 앞에서 걸었구나. 그래서 작아지는 날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었겠구나. 여유가 없을 때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쓸 수도 없었겠구나. 좋기만 했던 시절의 사람들과는 여전히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으니, 멀어지게 되었겠구나.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섭섭했던 일이, 이제는 안쓰럽고 나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일로 변한 것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간다. 벌써 10월의 마지막이다. 나는 앞으로 또 어떤 것을 경험하고,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되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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