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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Dec 09. 2022

도장을 다 찍은 쿠폰

예전에는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으면 쿠폰을 주고는 했습니다. 피자 종이박스에도 쿠폰이 붙어있었던 때가 있었어요. 몇십 장을 모으면 탕수육으로 바꿔 먹을 수 있고, 10장을 모으면 피자를 시킬 수 있는 그 쿠폰이요. 지금도 어딘가에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지 않던 비싼 배달비를 내고 음식을 시켜 먹으니 쿠폰을 줘도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 쿠폰으로 음식을 주문한다는 것이 죄송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무전취식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전화로 주문할 때마다 "쿠폰으로 시킬 건데요" 하고 미리 말하거나, 바쁜 점심 저녁 시간을 피해 주문하기도, 배보다 큰 배꼽처럼 다른 음식을 같이 많이 시키기도 했지요. 그러면 네, 하고 대답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바쁜데 지금 꼭 그걸 시켜야 하냐, 는 식의 집도 있었고요. 저는 후자의 집을 만나면, 늘 의아해했습니다. 쿠폰을 이렇게나 많이 모았다는 건, 단골이라는 뜻이고, 자영업을 하면서 단골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 아닌가요? 제가 자영업을 안 해봐서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걸까요?


대학생 때 자주 가던 학교 앞 백반집 아주머니는 연근과 유자로 무친 그 반찬을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저희 집은 연근 반찬을 잘하지 않아요), 길을 지날 때 말씀하셨어요. "내일 연근 반찬 할 거야!" 내일 백반 먹으러 오라는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할 거라고 고지해주는 사장님이라니, 어찌 안 갈 수가 있겠어요. 처음에는 연근 반찬 먹으러 가다 나중에는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지 않아도 그 사장님의 친절 때문에 자주 가고는 했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런 친절을 좋아합니다. 자주 가는 카페의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이 주문하기도 전에 내 메뉴를 먼저 말하며 웃으면 저는 그날 글이 잘 써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하고, 몇 번 가지 않았는데 "저번에 오시지 않았어요?"하고 스몰 톡을 거는 사장님을 만나면 더 자주 와서 얼굴 도장을 찍고 싶어 집니다.


일산에서 좋아하는 카페인 올댓 커피는 혼자서도, 친구들과도 무척 자주 가는 카페입니다. 그래서인지 쿠폰 도장이 금방 차죠. 도장이 다 찍혔는지도 모르고 내민 쿠폰 종이를 보며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쿠폰 사용하시겠어요?" 해서, 그러겠다고 하니, 사용한 쿠폰을 다시 돌려줬어요. 기념이라면서요.


맞아요. 저한테는 기념이에요. 누군가는 다 쓴 쿠폰을 왜 또다시 지갑에 넣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이 공간을 좋아하는 걸 누군가가 알아주니, 기념이 된 거지요. 새 쿠폰과 다 쓴 쿠폰 두 장을 지갑에 넣으며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브런치 공간이 바뀌었네요. 요즘은 시나리오 작업과 새 소설을 쓰고 있어서 에세이에 등을 졌는데, 오랜만에 가벼운 글을 쓰니 제 마음도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제 글을 오랜만에 읽으러 들러주신 독자님께, 저도 아는 척, 친한 척을 하고 싶네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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