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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Dec 16. 2022

희귀 난치병 환자로 18년째 살고 있다는 것은



제목이 거창하지만 사실 거창할 것은 없습니다. 제 브런치 북 <네가 곧 나임을>에 적어두었듯 이제는 오랜 친구니까요. 볼 꼴 못볼꼴 다 본 , 엄청 친한데, 또 가끔은 보기 싫고 막상 친하게 굴면 그게 또 꼴 보기 싫은 애증관계의 찐친이요. 물론 병과 친구가 되기까지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요.


이제는 크론병, 베체트병 등으로 많이 알려져 자가면역질환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병이 되었습니다. 몸속 세포가 이상세포가 되어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질환이죠. 저는 그보다 알려지지 않은 다카야수 동맥염 환자입니다. 몸속의 혈관이 좁아지는 병으로 18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병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할 수 있었던 일들도, 할 수 없게 만들어요. 괜찮았던 기분을 한 번에 망가 뜨리기도 하고, 가끔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도 하죠.

제 병은 괜찮다가도 하루아침에 염증을 만들고는 합니다. 분명 어젯밤에는 괜찮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어깨를 움직일 수 없거나, 아침엔 괜찮았는데 오후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숨이 가쁘고, 심장에 통증으로 잠을 설치고, 1년 365일 열이 나죠. 꼭 이렇게 쓰니까 마치 병을 자랑하는 것 같네요. 그냥 증상을 나열해보는 겁니다.

  

처음 아파서 병원에  날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아요. 열여덟의 반년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엄마, 언제 우리 언제 퇴원해?”

 “내일”

 “내일 안된다 하면?”

“그럼 모레”


라는 대화를 하며 두 계절을 보냈지요. 그때에는 병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백혈병이다 뭐다 여러 병을 예상하며 참 많은 검사를 했고, 그것만으로도 많이 지쳤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 같아요. 제게는 석식시간에 저녁 안 먹고 병실에 와서 내 밥을 뺏어먹고는 얼굴 보고 다시 야자 하러 돌아가던 친구들이 있었으니까요.


 그 후로는 약만 먹으면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대학 다니며 병은 또 한 번 진행되었고 그래서 급하게 휴학을 하고 입원을 했죠. 대학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을 2년 조금 넘게 다녔을 때에는 눈이 보이지 않아 또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병원에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죠. 원래 의사 선생님들 중에 말씀을 세게 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제 주치의 선생님이 그러신 편이었어요. 여하튼 그리고 또 입원.


가끔, 제 브런치 북 키워드를 보면 [문페이스 부작용] [스테로이드]를 검색해서 글을 읽으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 역시 소론도 12알을 먹었고, 친한 친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의 부작용을 경험했고, 제일 예쁘고 싶은 20대에 부작용들 때문에 많이도 울었어요. 보통 환우 카페나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수치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러기엔, 스테로이드제는 너무 많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악마의 약이죠. 지나가요. 서서히 그 악마의 약을 통해서 수치를 빠르게 줄이고, 약을 끊을 수 있게 되면 그 고민하던 것들은 천천히 다시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길고,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지도 알아요. 하지만, 저 역시 그때 “다시 돌아갈 수 있나”를 자주 검색했기 때문에 말씀드려요. 돌아갈 수 있어요.  


이렇게 늘 꼬리처럼 따라다니던 ‘희귀 난치병’이라는 단어는 제 인생에 늘 절망을, 또 불안감을 만들었어요. 난치, 불치, 이런 단어에서 오는 불안감이요. 꼭 평범하게 다시 살지 못하게 될 것 같은.


가끔 친구들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거나, 잘 모르고 “곧 나을 거야”라는 말을 꼬아서 듣던 때도 있었습니다. 난치병인데, 어떻게 괜찮아져? 어떻게 나아질 수 있어? 병원에서도 평생 낫지는 못할 거라는데? 속으로는 이런 생각들을 했었던 때가 있었죠. 괜한 화살을 남에게 돌릴 때 가요.


하지만, 18년이 지났어요. 앞에서 말했듯이 저는 이 병과 친구가 되었고, 이 병을 통해서 나를 달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온갖 파도에 휘둘리며 닻이 하나씩 생긴 거죠. 그 닻으로 또 거센 파도를 만나도, 이제는 전처럼 무서워하거나 겁을 내진 않습니다.


여전히 저는 아픕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달라진 것은 주변도 아프다는 것이죠. 어릴 때야 억울하고, 왜 하필 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었지만, 이제는 내 친구도 아프고, 내 친구의 친구도 아프고, 누구는 갑상선이 안 좋고, 누구는 신장이 안 좋고, 누구는 공황장애고.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아파요. 다들 아파서 내 아픔도 괜찮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 같이 버티고 있으니 저 역시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안 좋던 상태가 좋아지는 걸 예상할 수도 없고,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어요. 하지만 닻이 생겨요. 그 닻으로 또 살아가는 거예요. 이미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척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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