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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의 기록실 Aug 19. 2022

MBTI, 이렇게까지?

유독 한국인만 열광하는 MBTI, 왜?


“혹시, MBTI 가 어떻게 되세요?”


언젠가부터, 처음 만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에게 꼭 그들의 MBTI를 물어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를 포함한 밀레니엄 제트 세대, 이른바 MZ 세대 사이에서 MBTI를 서로 물어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보통 이름, 나이, 그다음 MBTI 순으로 물어보는 것 같다. 이름과 나이, 그다음에 가장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알아야 할 필수 정보가 이제는 MBTI 라니. 문득, 의문이 찾아왔다. 이름은 사람 존재 자체의 표식이니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기본 정보 같은 격이고, 나이는 가지각색의 나이에 따른 호칭과 존댓말 반말 등의 각종 구분을 해야 하는 한국 문화 속에 필수로 알아야 하는 정보이다. 


그런데 MBTI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항목에 대답하면 16개의 다른 성격 유형 중에서 본인의 것을 분류해주는 이 검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학적 미신이라고들 여겨지지만, 요즘 한국인들은 MBTI 검사에 꽤나 진심인 듯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꼭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각종 어플과 마켓에서 각 MBTI에 맞는 메뉴나 옷, 반려동물까지 골라준다. 알바나 신입 사원을 뽑을 때까지 MBTI를 적으라고 하는 곳도 많다고들 한다.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유독 한국인만 이에 열광한다. 이 성격 유형 검사에 왜 우리 세대는 이렇게 열광하고 맹신하기까지 하는 것인가. 


나의 첫 MBTI 검사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부산을 벗어나 생활한 적 없었던 부산 토박이가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위치는 제주도에 있었지만 기숙사 학교였던지라 학생들은 서울에서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곤조곤한 말씨의 서울 아이들에게 내 강한 부산 사투리 억양은 신기함 그 자체였고, 괜히 내 사투리를 듣고 싶어서 말을 시키는 친구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들 그저 신기한 마음에 그랬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속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아이"로 인식되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 영어를 쓰는 학교 환경도 낯설었기에, 항상 마음 안쪽에 어딘가 모를 외로움이 감돌았다. 


그때 우연찮게 접하게 된 MBTI 검사에서 “열정적인 중재자” 형인 INFP라는 결과를 받았었다 (현재 필자는 정반대인 ENTJ로 바뀐 것이 웃기다). 그때 느낀 어디에선가 한줄기 빛과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친구들 속에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항상 혼자 다른 것 같았던 소외감이 소속감으로 채워지는 듯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 한창 혼란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 부여된 INFP라는 자아는 나도 ‘다른 사람’이 아닌, 정상적인 사람 범주 안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대단한 위로였고, 자랑스러운 정체성이었다. 


유독 한국에서 뜨거운 MBTI 열풍은 집단주의 사회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라 어딘가 항상 속해있던 나 자신이 낯선 환경에서 소속감을 잃고 혼란을 겪었다가 MBTI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지금의 MBTI 열풍은 집단주의 사회 속에서 집단에 속하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그들도 어느 MBTI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부여함으로써 집단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특히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MBTI가 요 근래에 이슈화 된 데에는 팬데믹 사태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어느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본인의 정체성을 채워 왔지만 더 이상 격리 등으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부족한 소속감을 MBTI로 채우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팬데믹 사태로 소속감을 잃어가던 집단주의 사회 속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위로가 되어준 셈이다. 


하지만 요즘, MBTI는 잃어버린 소속감을 부분적으로 채워주는 역할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MBTI를 먼저 물어보고 본인이 선호하는 MBTI의 소유자들하고만 친해지고 싶어 하는 “MBTI 차별자”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본인들의 행동의 이유를 MBTI와 연관 지으며 “내 MBTI는 원래 그래”라며 다른 사람과 타협하기 거부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MBTI를 16개의 기성품 자아 중 하나를 고르는 “손쉬운 자아 쇼핑” 이라며 비판했다. 대량 생산된 상품을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쇼핑처럼, 간단한 설문을 지불하고 고착화된 16개의 기성품 자아 중 하나를 부여받는 행위가 단순 쇼핑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16개의 종류로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MBTI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과 같다.  


우리는 손쉬운 설문을 통해 받은, 세상에 16개밖에 없는 자아를 내세우며 나와 같거나 맞을 사람들을 구분한다. 그렇게 쉽게 얻은 16가지 중 하나의 고착화된 자아가 각기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자아를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까? 신기술 개발, 신 에너지 개발 등 혁신과 새로움을 통한 개척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높게 인정되는 시대이다 (신기술 개발자 테슬라의 주가 상승을 보라!). 정말로 앞으로 인정받을, 떠오르는 트렌드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하고 개발해 본인의 독자적인 가치를 올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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