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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Sep 04. 2023

한국영화 'BIG4', 놀자판 아니면 엄근진

여름만 되면 배신당하는 관객들

'놀자판'이라는 말이 있다. 우선 놀고 보자는 향락주의적인 판국, 혹은 여러 사람이 모여 놀고 즐기는 자리를 뜻한다. '엄근진'이라는 말도 있다. 엄격, 근엄, 진지 세 단어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가볍게 웃어넘겨도 될 일에 높은 잣대를 들이대거나 필요 이상 무거운 태도를 보일 때 쓰인다.


올여름 한국영화 'BIG4'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 매스컴에서 연일 "빅포"라고 떠들어대니 이제는 기준이고 자시고 할 거 없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졌다. 흡사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한 데 모아 놓은 것 같은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영화들, 실제로도 그 위압감이 어마어마했을까. 개봉일만을 손꼽아 기다린 감독 및 스태프, 배우들에게 미안한 얘기를 조금 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모두 '놀자판', 아니면 '엄근진'이다.

비공식작전과 밀수는 '놀자판'에 해당한다. 특히, 밀수는 염정아를 비롯한 몇몇 배우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제작 후기를 밝히면서 "이렇게 즐거운 촬영은 없었다. 항상 촬영이 기다려졌고 촬영이 끝나도 바로 헤어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더 이상 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 정도만 들어도 이들이 얼마나 즐겁게 '놀자판'을 벌였는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비공식작전은 어떤가? 배우 간 '케미'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절친, 하정우와 주지훈이 모로코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돌아온 작품이다. 한국음식이 그리워 젓갈을 직접 담갔다는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들어서 영화보다 더 인상 깊을 정도다.


'배우들이 즐겁게 촬영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사람들만 신났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론, 즐겁게 촬영하고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면 이런 평가가 무색해지겠지만, 비공식작전은 감독과 배우들이 '눈물의 쫑파티'를 할 정도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다. 물론 밀수는 흥행 측면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없겠지만, 무려 '류승완 감독'이라는 네임밸류(name value)와 성수기 텐트폴 무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누적 관객수 507만 명이 과연 많다고 할 수 있을까.


두 작품은 스토리를 전개하는 호흡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비공식작전이 불필요하게 긴 호흡을 가져갔다면, 밀수는 짧아도 너무 짧다.


한 예로 비공식작전 극 중 후반 주지훈의 택시가 좁은 골목에 갇혀서 위기에 처했던 신(scene)을 떠올려보자. 이때 관객 중 단 한 명이라도 결국 그 택시가 골목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주인공 일행이 붙잡히거나 죽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긴박감이라고는 1그램(g)도 느껴지지 않는 신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한 이유가 무엇일까. 극 전체를 놓고 봐도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장장 132분이나 필요한지 의문이다. 막힘없이 이야기의 핵심을 전개하고 조금 더 액션에 공을 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밀수의 속전속결 연출 방식은 류승완 감독의 2006년 작 '짝패'가 돌아온 듯했다. 비공식작전과 달리 시원시원하게 스토리가 전개된다. 문제는 시원하다 못해 너무 급하다는 거다. 늘어질 대로 늘어졌던 비공식작전과 반대로 밀수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129분이라는 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다.


한 예로 가족을 잃은 염정아가 해 질 녘 배 위에 걸터앉아 처량하게 '앵두'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신을 떠올려보자. 관객이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면서 공감할 틈도 없이 곧바로 '힘차게 빠른 속도로' 필름이 감긴다. 극 중 배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정을 갈무리할 여유도 없이 '다른 종류의 갈등'을 마주해야 한다. 오로지 액션에 방점이 찍힌 '짝패'에서는 이런 연출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졌지만, 서사에 적지 않은 무게가 실린 '밀수'텍스트와 사진을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는데 발표자가 빔프로젝터를 다음 챕터로 넘기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OST의 향연은 또 뭐란 말인가. 대사보다 노래가 더 기억에 남을 정도다. 중간중간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입체적인 컬러그레이딩과 폰트가 몰입을 방해한 건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사실 배우들보다는 감독이 더 작정하고 신명 나게 일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관객도 함께 즐길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콘크리트유토피아'와 '더문'은 웃음조차 안 나올 정도로 '엄근진'이다.


특히, 콘크리트유토피아는 감독과 배우들에게 '깊은 철학 속 적절한 분량의 웃음코드를 배치한 명작'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의 눈엔 아니다. 철학은 직관적이면서도 가벼웠고 웃음은 단순하다 못해 진부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이슈들을 몽땅 한 그릇에 담고 비비는 것 만으로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성경을 모티브로 한 연출'은 양보하더라도 말이다. 왜 평온한 관객 앞에서 '황궁아파트' 주민들만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것인가.

'더문'은 시도 자체가 신선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다. 그런 이유만으로 높게 평가해야 한다면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1999)'는 또 어떠한가. 과연 한국 관객 중 '더문'이 개봉하기 전 '엄청난 SF' 영화로 기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감독과 배우들만 분위기를 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같은 장르에 또 도전할 한국영화계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필자가 가장 지적하고 싶은 지점은 시도 때도 없이 시전 되는 '국뽕''신파적 의리'다. 앞으로 이런 '참신한 소재'에 굳이 '국가'와 '민족'을 동원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2013년 개봉한 '그래비티'를 떠올려보자. 주인공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전 국민과 정부의 염원 속에서 전폭적인 희생과 지원을 받아 지구로 무사귀환하는가? '초보자'의 입장에서 SF를 연출한다면 일단 장르에 충실해야 한다. 전례가 없다시피 한 한국영화계는 기본적인 레시피에 충실해야지 아직 조미료를 늘릴 때가 아니다. 이게 뭔가 도대체. 우주에서 펼쳐지는 '비상선언(2022)'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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