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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Mar 01. 2024

35. 파리 패션회사에서 살아남기

2018년 7월


매일 아침 9시,

지하철을 타고 Châtelet-Les Halles 역에 내려 Rue Montmartre로 이어진 출근길을 걷는다. 진한 청록색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하늘을 덮고 있는 이 길은 파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Cos 매장과 향수 편집샵인 Nose, 커피 애호가들에게 이미 유명한 Matamata 카페 등, 세련된 공간들이 늘어서있는 이 길을 걷고 있으면 기분이 참 상쾌해지곤 했다. 삼각형 모양으로 된 작은 Place Ghislaine Dupont 광장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내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마쥬 오피스가 나온다.


그동안 취업을 하거나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일체 없었지만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각자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하철을 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무실에 도착해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보람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늘 파리에서 프리랜서로 있으면서 매일 하루를 혼자 살아가며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어딘가 소속되고 사회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상당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고작 인턴일 뿐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새 컬렉션을 미리 감상한다든지, 전 세계에서 날아온 관계자들이 오피스에 방문할 때마다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등, 세계적으로 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파리에서 이런저런 트렌드들을 목격하며 패션 관련 일을 한다는 것도 굉장히 뿌듯한 일이었다. 특히 마쥬 20주년을 맞이하여, 프랭땅 백화점 루프탑을 통째로 빌려 연 프라이빗 파티는 영화에서만 봐왔던 패션 피플들의 화려함과 호화스러움을 직접 체험해 본,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화려함과 패셔너블한 분위기 속에 빠져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저녁 5,6시쯤이 되면 퇴근을 준비한다. 사무실을 나오면 나는 일부러 바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센강 둑길을 따라 하염없이 몇 시간이고 걷곤 했다. 그렇게 바깥에 머무르면서라도 집에 혼자 귀가하는 시간을 늦추고 싶어서였을까, 퇴근길은 허무했고, 텅 빈 4평짜리 집에 돌아오면 공허했다.

프랑스인들 사이에 섞여 하루종일 불어를 하면서, 실수하지 않게 매일이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오면서, 나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디자인을 할 때 작업에 영감을 줄만한 트렌디한 외국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알고리즘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듯한 8,90년대 감성의 오래된 한국 노래들이 믹스로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눈물이 나왔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사무치게 외로움이 느껴졌다. 겨우 진정을 하면서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봤을까 조심히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때 느끼게 되었다. 지금 이곳에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나 갑자기 한스밴드 노래가 나와서 듣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어'

그저 이런 말 하나 공감해 주고 옛날 얘기를 같이 나눠줄 그 누구도 이곳에 없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이 외로움이 어디서 온 건지 알게 되었다.


유학이든 이민이든 또는 어학연수든,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건 결국 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짊어져야 하는 굴레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에서 적응하고 살면서도 늘 같은 한국인을 만나려고 하고, 우리끼리의 모임을 이어가고, 술자리를 가지며 그런 외로움을 함께 달래곤 한다.

4년 동안 벨기에에서 생활을 한 나는 파리에 오자마자 빠른 시간 안에 적응을 해야 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또 급히 일을 구하느라 그러한 것들을 챙길 여념이 없었다. 미련하리만치 인맥을 이용하는 법을 몰랐던 내가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운 것들은, 모두 어떻게든 혼자 버텨내는 방법뿐이었다.


비프랑스인이 나밖에 없었던 마쥬 오피스에서는, 모두가 친절했지만 또 모두가 확실한 선이 있었다. 그나마 같은 인턴 직원들끼리는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지만 내 상사인 Zak은 이상하리만치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상사의 보살핌이 없으니 더 주눅이 드는 것 같았고, 처음 가졌던 희망과 포부와는 달리 나는 그냥 조용히 회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동양인 특유의 예절과 친절함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나마 밉보이는 사람은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그리고 여느 인턴답게 비슷비슷한 어시스던트 작업만 이어오던 나에게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여름 새 컬렉션을 소개하는 짧은 모션 그래픽 영상을 한번 만들어보라는 요청이었다. 예전 마쥬 직원들의 20주년 영상편지를 작업했던 이력 덕분에 간단한 영상작업 정도는 맡겨도 될 거라고 판단했는지, 인턴으로서는 흔치 않게 영상의 DA (Direction Artistique: 아트디렉션), 음악, 콘셉트 등 A부터 Z까지 혼자 독립적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마쥬에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가 따로 없었고, 예전부터 영상 작업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건드려봤었기에, 가진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만든 결과물을 상사에게 보여주었다.


간단한 영상이었지만 콘셉트이나 음악, 모션 효과등이 마음에 들었는지, Zak은 이 영상을 디렉터인 Yves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영상을 보자 단번에 승낙했다. 내가 온전히 작업한 순수 결과물이 처음으로 마쥬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마쥬 SNS계정의 모든 모션 콘텐츠 제작을 맡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상사인 Zak 밑에서 디자인 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어시스던트로 도움을 주는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그리고 마케팅 매니저와 단독으로 미팅을 가지며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간 내 영상과 디자인 작업들이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각 부서에서 요청하는 업무의 분야가 점점 더 넓어지고, 어느새 내 일은 인턴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6개월 계약의 동양인 인턴에게 조금씩 모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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