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엔 Oct 16. 2023

비 맞고 싶다

‘하... 우산쓰기 너무 싫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비를 피하겠다고 우산 안에 몸을 욱여넣는 내가 싫었다. 비가 뭐라고....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마지막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길 : 집에 가는 길이에요?

가브리엘 : 네       

길 : 바래다줄까요? 아니면 커피라도 한잔...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길 : 이런, 비가 오네

가브리엘 : 괜찮아요. 전 젖는 거 상관없어요.

길 : 진짜요?

가브리엘 :네. 사실 파리는 비 올 때 제일 예뻐요.

길 : 나도 늘 그렇게 말하는데, 완전 공감해요.     


그렇게 둘은 비 내리는 파리를 걸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와 달리 나는 늘 큰 우산을 쓰고 다닌다. 과연 영화 제목이 ‘미드 나잇 인 서울’이었어도 그들은 비를 맞고 다녔을까. 한번은 너무도 비를 피하고 싶었지만, 차라리 맞으면 어땠을까 싶은 날이 있었다.


 소나기가 내린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언제 외출할지 간 보는 중이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보통 저녁에 약속이 있는 날이면 서너 시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 카페에 간다. 오늘의 약속 장소는 숙대입구.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이 30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뽀송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려면 소나기가 내리지 않는 시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 소나기가 그쳤다. 구름 사이로 햇빛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지금이다...! 손에 무언갈 들고 다니는 걸 매우 싫어해 배낭에 작은 우산을 하나 넣어 부리나케 집 밖으로 나왔다. 근데 5분 정도 지났을까.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도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이거 심상치 않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진다. 하... 이럴거면 큰 우산 들고나올걸. 어쩔 수 없이 비를 피하고자 배낭에 넣어둔 작은 우산을 꺼냈다. 배낭은 앞으로 메고 작은 우산을 쓰며 열심히 길을 걸었다. 하지만 작은 우산은 나를 비로부터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는 바람에 팔, 바지, 티셔츠는 물론, 속옷까지 다 젖었다. 아직 15분은 더 가야되는데... 도대체 이 비는 왜 그칠 생각을 안 하는 거지.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슬리퍼를 신어 발은 젖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는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발부터 종아리까지 가득했다. 너희는 도대체 어디서 온거니.... 우선 아무 데나 짐을 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가장 먼저 휴지를 뜯어 젖어있는 다리와 발을 닦았다. 하지만 전혀 닦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을 더 닦고 나서야 화장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는 뒤늦게 자리를 찾았다. 공부해야 하니 큰 테이블에 앉는 게 좋겠다. 마침 사람도 없었다. 대충 짐을 풀고 핸드폰을 켰다. 음... 오늘은 뭘 마시지. 기분도 꿀꿀한데 달달한 거 마셔야겠다. 그냥 초코는 텁텁하니까 민트초코 마셔야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메뉴를 픽업하라는 알림과 함께 음료를 받으러 갔다. 그러고는 빨대로 길게 한 모금 마셨다. 하... 살것 같다! 하지만 그도 잠시, 옷이 다 젖어서일까 차가운 에어컨 바람 때문에 갑자기 확 추워졌다. ‘아으 추워. 이럴 거면 따뜻한 거 마실걸! 오늘 공부는 다 했네.’ 그 이후로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고 애꿎은 에어컨만 계속 쳐다봤다. 얼른 약속 시간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한두 시간 후 나는 밖으로 나갔고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하... 이럴거면 그냥 집에서 쉴걸.’     


 만약 내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비를 홀딱 맞았으면 어땠을까. 당연히 더 짜증이 났을 것이다. 옷뿐만 아니라 배낭까지 다 젖었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보다 더 큰 후회를 했겠지. 그럼 파리라고 달랐을까. 아마 더 열심히 우산을 쓰고 다닐 것이다. 신경 써서 입은 옷이 다 젖는 건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 그들이 비를 맞을 수 있었던 건 결코 파리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쿨하게 비를 맞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럼 굳이 번거롭게 우산을 쓰지 않아도, 옷이 젖어 기분이 상하지도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쿨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다양한 도시락 반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