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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Jan 08. 2023

[가시나킥] #1 미운일반학생새끼

운동부와 일반학생 그 사이 어딘가

#1


철썩!

 그건 짝! 이라던가, 쫙! 이라던가 하여간에 이러한 단발적인 소리와는 달랐다. 말 그대로 철썩철썩하는 소리를 내며 마치 곰팡이가 핀 것처럼 보이는 싸구려 대리석 무늬 앞으로 턱 밑까지 오는 숱 많은 단발머리가 휘날렸다. 뺨을 감싸 쥔 덜덜 떨리는 손위로 다시 손이 날라가 이번엔 뺨 위의 손등을 내려친다. 손등이 하얗게 변했다 곧 새빨갛게 붉어진다. 머리숱이 많은 혜지의 목이 한쪽으로 훽 꺾이더니 이내 쿵! 하고 대리석 무늬 벽으로 찍혀 미끄러진다. “악!” 하고 혜지가 머리를 손으로 감싸 쥐는데 혜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다시 머리채를 휘감은 손이 한번 더 혜지의 머리를 벽에 찍는다. 이 과정을 먼저 겪은 소영이는 팔짱을 끼고 있는 두 명의 여자애들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고 있다. 소영이의 양쪽 얼굴 역시 혜지처럼 발갛게 부어 있는데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살짝 보이는 아랫입술은 터졌는지 피가 보였다. 마지막으로 혜지를 벽에 내리찍고 나서, 혜지가 벽에 미끄러지듯이 쓰러졌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지하에 있는 용가리 콜라텍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제외하고, 인적 없는 1층 화장실은 소영이와 혜지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아 이 씨발년들아 좀 그만 울라고.”


내 앞의 짧은 커트머리의 여자애가 세면대에 걸터앉아 혜지와 소영이를 향해 욕을 뱉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켰다. 그리고 한 대 피울래? 하는 식으로 내게 담배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괜찮아..”하고 말도 했던 것 같다. 혜지와 소영이가 곁눈질로 내 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흐느끼는 소리에 억울함과 분노가 서려있다. 왜? 왜 너는 안 맞아? 너는 왜 안 맞는 건데?  


그래.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소영이와 혜지와는 최근에 친해졌다.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는 일진이니 이진이니 이런 말 자체가 유치한 말이었지만, 당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일진은 정말로 있었다. 심지어 1짱이 누구냐, 걔는 간판이지 사실 2짱이다. 또래들끼리 이런 이야기도 가십처럼 나눈 기억이 있다. 소영이와 혜지는 일진이 아닌 이쩜오진 정도 되는 같은 반 친구들이었고, 나는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체육특기생으로 태권도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고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얼마 뒤에 운동부를 그만둔 외톨이었다.


,중,고등학교가 낮은 담장을 하나 끼고 나란히 위치한 계획 신도시 초입에 있는 이 중학교는 옆의 초등학교에서 고대로 진학한 아이들이 대다수였으며, 다른 학교에서 진학한 아이들도 1학기 동안 섞이고 흩어지며 이미 끼리끼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학교 운동부들은 엘리트 운동선수라 하여 수업을 4교시 밖에 안 듣고 대부분의 시간을 훈련하는 데에 썼기 때문에, 가뜩이나 초등학교에서 혼자 올라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학교에서 1학기와 여름방학을 태권도부에서 보냈던 나는 사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같은 반 친구들과 2학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렇게 외톨이가 되면서까지 태권도부를 그만두게 된 연유는, 그동안 태권도 학원에서 동네 언니오빠들과 방과 후에 즐겁게 놀면서 했던 운동이었던 태권도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14살의 어린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의 결단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죽도를 들고 때리는 무서운 감독 선생님과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 함께 맞아야 하는 선배들의 기강 잡이. 그리고 실력이 늘지 않고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내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괴로움까지… 즐거웠던 태권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나는 그저 주어진 것들을 했다.


선배들이 시키는 이상한 심부름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이 물티슈를 구해오라 하면, 쉬는 시간 내내 1학년의 1반부터 10반까지를 모두 들락거리며 물티슈가 있는 애들이 없는지 묻고 다녔다. 쉬는 시간 10분이 끝날 때까지 물티슈를 구하지 못하면 1학년 모두가 집합을 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잘 알지도 못하는 1학년 애들을 헤집으며 물티슈를 구걸했다. 지금 생각하면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사 왔으면 될 것을. 14살의 머리로는 학교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물티슈 이야기는 나는 기억도 하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같은 반 친구가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너에 대해서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제발 물티슈 있으면 빌려 달라고 사방을 뛰어다녔던 게 가장 기억이 난다고. 아.. 내가 그렇게 불쌍했었구나. 나는 태권도부였던 14살의 나를 다른 시점으로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으로 재구성한다.


이밖에 내가 기억하는 태권도부의 기억은 1학년 동기들이 다 같이 주어진 10초 안에 호구(태권도 겨루기 시합에서 입는 보호구)를 부랴부랴 입고서 일렬로 줄지어 발길질하는 남자선배에게 달려가 배를 걷어차이고 매트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나, 죽도를 들고 있는 감독 선생님 앞에 집합해서 이름이 호명되면 앞으로 나가 엉덩이를 맞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에 발끝을 내려다보며 햇살에 떨어지는 먼지를 바라봤던 고요한 두려움이라던지.. 하는 것들. 그리고 다른 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을 그저 해내고 있던 나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 즈음,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일주일이 넘게 입원을 했고, 의사는 엄마에게 ‘스트레스성 급성 위염과 장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건 옛날로 치면 보통 ‘화병’이라고도 하죠.라고 덧붙이며. 사나흘 간 조금이라도 음식을 넘기면 냅다 쓰레기통에 구토를 하고 화장실에 기어가 설사를 하는 나를 보던 엄마는 병원식으로 나온 미음과 간장 종지의 뚜껑을 신경질적으로 닫으며 일갈했다.


“이런 썅놈의 시키들. 그놈의 태권도 때려치워 그냥.”


나는 못 이기는 척 엄마의 결단에 기댔다. 열받은 엄마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서 학교에 복귀할 때에 나는 태권도부가 아닌 일반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엄마가 한바탕 학교에다 성화를 냈던 것도 같다.


 아, 앞으로 일반학생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될 거 같으니 일반학생이라는 워딩에 대해서 말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다. 당시 엘리트 운동을 하던 운동선수 출신들은 알 수도 있는데, 운동을 하던 우리끼리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급우들을 ‘일반학생’이라 불렀다. 언제 누가 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지는 알 수 없지만 태권도부나 펜싱부나 축구부나 하여간에 운동을 하는 사람끼리는 운동을 하지 않는 학생을 일반학생이라 불렀고, 그건 뭐랄까.. 마치 해리포터에서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머글’이라 일컫는 것과 유사한 뉘앙스였다. 운동부가 마법사들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해리포터의 마법사 들과 머글들이 함께 살아가지만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당시 엘리트 운동부는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일반학생과 사는 방법과 문화가 아예 달랐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낯설어했다. 웃기고도 가엾은 지칭이지 않은가. 일반학생. 운동부가 뭐 그리 특수하다고. 그래봤자 운동 좀 잘하는 10대였을 뿐인데.


 그렇게 ‘머글’처럼 ‘일반학생’이 된 나는 머글들의 사회 속에 적응해 나가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당연히 친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소영이와 혜지 같은. 학교 클라스가 아닌 같은 반 안에서 조금 노는 친구들이 유일한 말동무였다. 나는 소영이와 혜지 덕분에 4교시만 듣고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닌,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함께 먹고, 전교수업을 전부 듣고, 수업이 끝나면 함께 반 청소를 하고, 다른 친구들이 하교를 할 때에 같이 하교를 하는.. 일반학생들일반학생 다운 일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소영이와 혜지가 그저 운동을 그만둔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심을 보인 것일지라도, 홀로 일반학생들의 외딴곳에 떨어진 이방인 같던 나에게 소영과 혜지는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나는 소영과 혜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어울렸다. 하교만 같이 하는 게 아니라 번화가에 가서 함께 놀며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렇게 번화가에 유행하던 ‘콜라텍’도 드나들게 되었다.



콜라텍. 지금은 중년의 사랑이 꽃피우는 사교댄스장 같은 곳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99년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수 있으면서, 술이 아닌 콜라를 팔기 때문에 청소년이 합법적으로 즐기는 유사 클럽이었다. 이정현의 ‘와’ ‘바꿔’ , 채정안의 ‘무정’ 등 테크노 음악을 등에 업은 콜라텍은 수도권 번화가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고 동네에서 좀 논다 싶은 아이들은 콜라텍에 가서 놀다 오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여흥이 되었다. 각 중고교에 있는 수많은 노는 아이들이 모였으니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고, 크고 작은 사건 중 작은 사건에 속하는 한 에피소드가 나와 소영, 혜지에게 일어난 것은 2학기가 중반을 지나간 시점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용가리 콜라텍을 찾은 소영과 혜지, 나는 각자 구석에서 테크노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모든 시절의 클럽들이 그러하듯 유행하는 춤이 있으면 클럽에서 춤을 추는 사람 중 그걸 뛰어나게 잘 추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클럽에서 유행하는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어디에 있던지 눈에 띄게 마련이다. 나는 춤을 잘 추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쉬는 시간 동안 영턱스클럽, HOT의 춤을 추는 친구들 옆에서 나이키를 성공해 보이면 서로 박수를 쳐주던 그러한 순간이 좋았었다. 그래서였다. 짧은 커트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테크노 음악에 맞춰 현란하게 팔을 흔들자 저절로 눈이 갔다. 은근슬쩍 근처로 가서 그 아이가 춤을 추는 것을 지켜보고 비슷한 리듬으로 나도 팔을 흔들어 보기도 했다. 그 아이의 일행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모두 춤을 잘 췄지만, 그 애는 특히나 눈에 띄었다. 그런데 나만 그 아이를 신경 쓰던 게 아니었나 보다. 혜지와 소영이가 근처에서 그 아이들 쪽을 흘겨보는 것이 보였다. 몇 곡의 음악이 지나가고 혜지가 내 쪽으로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쟤네가 따라오래...” 혜지가 말한 쟤네는 커트머리 여자아이의 일행이었고, 혜지와 나는 그 아이들에게 둘러 쌓이듯이 지하 콜라텍에서 1층으로 올라갔다.


초겨울인데도 인적이 없는 1층 화장실은 매우 추웠다. 라디에이터 같은 건 모양으로만 달려있는 듯했고, 형광등 두 개만 비좁게 비치는 녹색 대리석 무늬의 화장실로 들어가자, 커트머리 여자아이와 일행에게 둘러 쌓여 양쪽으로 뺨 싸다구를 후려 맞는 소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태권도부에서 선배들이나 선생님이나, 겨루기 시합을 나가 여러 가지 폭력을 경험해왔다 생각했는데,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행하는 폭력은 지금껏 듣도보도 못한 광경이었다. 소영이 입술에 피가 터지게 때리던 커트머리 아이는 화장실로 들어온 나를 돌아보더니 한 걸음에 다가왔다.


“씨발, 너네 나 왜 꼬라보고 있었냐?”


당장이라도 머리채를 휘어잡을 기세로 묻는 커트머리 앞에서 나는 머뭇거렸다. 상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았다. 소영이는 대체 왜 맞고 있는 건지, 혜지는 왜 아무 말 못하고 다음은 본인이 맞을 차례인양 당연하다는 듯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앞에 있는 커트머리의 위악스런 태세에 겁이 나고, 일단 어이가 없었다. 대체 뭘 잘못해서?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생각으로 머뭇거리던 찰나 안쪽에서 이제 혜지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뺨을 맞고 휘청이는 혜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벽에 찍는 것도 보였다. 커트머리는 세면대에 물을 틀고 손을 씻으며 거울로 나를 쏘아보면 다시 채근했다.


“너 나 꼬라봤잖아. 개년아. 왜 봤냐고.”

“…너 춤 잘 춰서. 따라 추려고 봤어.”


나도 세면대 거울로 커트머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운동을 하면서 맞는 건 이골이 나 있었다. 게다가 운동부에서 맞는 건 이유가 있었다. 이상한 기준이라도 늘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맞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설명하고 싶었다. 너는 나를 때릴 이유가 없다고. 커트머리는 내 대답을 듣고 잠시 고장이 난 것처럼 멈췄다가 갑자기 웃음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 이 미친년 좀 보게. 뭐라고?”

“너가 춤 잘 추니까 계속 본 거라고.. 나도 잘 추고 싶어서…”


커트머리는 으쓱하더니 세면대에 걸터앉았다. 그 사이 혜지는 계속 맞고 있었다. 나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친구들을 때리지 말라고 말려야 하나? 아니면 나도 같이 때리라고 해야 하나?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던 새에 웃는 얼굴로 담배를 피우며 나를 가만히 보던 커트머리가 “야,야, 그만하고 나가자.” 라며 일행을 불렀다. 혜지와 소영이 앞에 있던 애들은 다 같이 담배를 나눠 피우고 커트머리와 함께 깔깔거리며 화장실을 나갔다. 나가면서 잊지 않고 소영이와 혜지 머리를 한 번씩 더 치는 바람에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세차게 흔들렸다.


“…괜찮아?”

셋만 남겨진 화장실에서 내가 먼저 물었다.


“…씨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소영이가 먼저 뛰쳐나갔고, 혜지는 나를 쏘아보더니 소영이를 따라 내 어깨를 치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혼자만 남겨진 화장실에서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나를 기억한다. 억지로 꾸민 14살의 어색한 화장. 덩그러니 켜진 형광등 밑에 허옇게 뜬 혼자만의 얼굴. 일진도 아닌 이쩜오진 사이에 껴보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이방인. 혼자가 되었어도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들이 맞는 이유도, 그들이 때리는 이유도, 내가 여기 혼자 남아야 하는 이유도. 결국 나는 저들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한 번도 일반학생이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열다섯은
희한한 가시나들과 함께 찬란했다.
창단한 지 1년도 안 된
오합지졸 여자축구부가
찬란하게 부흥하는 이야기.
리바이벌
가시나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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