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다. 창가 쪽에 앉아있는 소영이와 혜지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돌아보았다. 혜지가 앉아있는 1분단 옆 맨 뒤에서 두번째에 내 책상이 있다. 아니, 있어야 했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위화감은 이것 때문이었나. 내 책상이 교실 맨 뒤 구석에 넘어져 있고, 원래 내 자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의자만 남아있었다. 나는 조용히 교실 뒤로 가서 넘어져 있는 책상을 일으켰다. 책상속에서 비스듬히 빠져 걸처 있던 교과서와 잡동사니가 책상을 일으키자 다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교과서 표지들이 하나같이 엉망이다. 어제 대걸레가 담긴 통에 빠져 있던 걸 꺼내 오고 제대로 말리지 않아서 책 자체가 우글우글했다. 나는 교과서와 공책들을 다시 책상속에 넣은 뒤에 두손으로 책상을 들고 무릎으로 받쳐서 한 걸음 씩 움직여 원래 내자리로 돌려 놓았다. 반 아이들의 조용한 시선이 의자에 앉아 책가방을 책상에 거는 나를 쫓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이내 다시 조금씩 시끌시끌 본인들끼리 나누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나는 책상속에 손을 넣어 1교시 수업 교과서를 찾는다. 1교시는 국어였다. 표지의 ‘국어’ 가 검은 사인펜으로 한 획이 더 생겨서 ‘죽어’ 가 된 지는 일주일 정도 되었다. 물에 젖었다 마른 교과서는 책장끼리 달라붙어서 펼치기가 어렵다. 나는 책을 살살 불어가며 오늘 수업에 필요한 부분을 찾아 책을 펼쳐보며 생각한다. 얘네들은 언제까지 이러려고 그러는 걸까.
그 일이 있던 주말이 지나고 소영이와 혜지가 심하게 부은 얼굴로 학교에 나타나자 학교는 작게 소란이 일었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우리 학교에서 작년에 심한 학교 폭력 사건이 있었고, 폭력에 가담했던 주력 멤버들이 전부 강제 퇴학이나 전학을 가게 되며 학교 자체가 큰 몸살을 겪었던 전례가 있었기에 올 해 모든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매우 조심하는 눈치였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으로 교내가 아닌 외부에서. 같은 학교 학생이 아닌 타 학교 학생들과 소소한 다툼이 있었다 정도로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소란이었다. 이렇게 선생님들조차 쉬쉬하며 지나가는 분위기에 타 학교에서 악명이 자자한 일진 패거리였던 커트머리 일행에게 별 다른 복수를 할 수도 없거니와, 우리 학교 일진이라고 여겨지는 애들은 자기들과 친하지도 않은 이쩜오진 소영이와 혜지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두 사람의 분노는 해결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대놓고 따돌리지는 않았다. 소영이와 혜지를 필두로 삼삼오오 모여 나를 흘겨보면서 수군거리던 수준이었던 따돌림은, 소영이와 혜지의 적나라한 적대감에 동화 된 아이들로 증폭되며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은근한 따돌림’인 ‘은따’에서 대놓고 따돌리는 ‘왕따’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앞에 있는데 들으라는 듯이 조롱하거나, 지나갈 때 은근히 다리를 걸고 미안하다고 깔깔 웃거나 하는 장난들이 늘어났다. 한 번은 복도에서 일부러 어깨빵을 하고 지나가는 소영이와 아이들에게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몇 주간 그냥 참고만 있던 내가 갑자기 화를 내자 소영이와 아이들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본인들이 신체적으로 불리한 장난은 하지 않고 방법을 바꾸었다. 그때부터 내가 앉는 책상 속이 멀쩡한 날이 없었다. 교실 뒤에 있던 사물함은 문짝이 우그러져서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이전엔 태권도부에서 운동을 하러 가는 게 너무 싫었는데, 이제 그냥 학교에 나가는 일 자체가 다 싫었다. 그러다 어느 날 등교하기 전 엄마에게 학교 가기 싫다 말을 꺼냈다가 도로 삼켰다. 왜 학교에 가기 싫은 지 걱정하는 엄마의 얼굴 한 편에 2교대 야간공장에서 방금 집으로 돌아온 피곤함이 더 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냥 해본 말이었다고 둘러대며 집 밖을 나서자 엄마는 그제서야 안도하며 아침잠에 들었다.
12월이 되고 겨울 방학이 가까워졌다. 나는 방학이 되면, 2학년이 되면, 반이 바뀌면, 어떻게든 지금과 같은 시간이 지나갈 것이라고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손꼽아 방학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실 한 편으로는 2학년이 되어 반이 달라져도 따돌림이 그대로 지속될 거라는 두려움도 함께 커지고 있었다. 더러워진 책상에 앉아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교실 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혼자 도시락을 먹을 때 느끼는 감정. 그건 끝 간데 없는 외로움이었다.
겨울방학이 채 열흘이 남지 않았을 때 체육선생님이 나를 부르기 전까지 나는 이런 외로움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 체육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든지 별 관심이 없었다. 헌데 교무실로 나를 부른 김시국 체육선생님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지야, 너 덕천초등학교 나왔지?”
“네. 덕천초에서 저만 올라왔어요. 왜요?”
“내년에 덕천초등학교에 여자축구부 6학년 애들이 우리학교에 특기생으로 진학하거든.”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다. 덕천초등학교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로 축구부뿐만 아니라 육상부나 정구부 등 다양하게 운동부를 육성했었다. 문제는 너무 다양했다는 것. 나 역시 육상부로 높이뛰기 선수로 대회를 나갔다가 태권도 대회도 나가고 정구부로 진학 상담도 받는 등 너무 다양한 체육 진로로 인해 전문 운동부가 있는 학교는 아니었다. 졸업하기 전 잠깐 나도 축구부에서 운동을 했었지만, 그 역시 방과 후 활동의 느낌이 강했다. 김시국 체육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졸업한 이후에 6학년이 된 아이들이 좀 더 전문적으로 훈련을 하게 되고 같은 지역에 여자축구부가 있는 중학교가 없자 내가 다니는 중학교에 새로 창단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내가 6학년일때에 5학년이었던 축구부의 아이들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래서요?
“..그래서요?”
“6학년 애들이 7명이 오거든.”
“네. 그런데요?”
“축구는 몇 명이 하는거지?”
“..11명일걸요?”
아닌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11명은 엔트리이고, 후보가 더 있어야 하나? 11명이면 축구 자체는 가능한가? 나는 대답을 해놓고 맞는 말을 했는지 어땠는지 몰라서 체육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육선생님도 얼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고 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하는 얼굴로 내게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뭐지? 왜 이러지 이 양반? 서로 눈만 껌뻑거리면서 바라보고 있자, 선생님은 쩝. 입맛을 다시더니 말했다.
“이지 너 태권도 그만두고 운동 하고 싶지는 않았어? 음.. 선생님은 네가 축구부로 운동 다시 했으면 어떨까 하는데?”
“네?”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린가. 내가 태권도부를 어떻게 그만뒀는데, 지금 내 앞에서 이 체육선생님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얼굴 전면에 웃음을 지으며 나한테 다시 운동부에 들어가라고 권유를 할 수 있는거지? 나는 설탕으로 만든 된장찌개를 먹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황당하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체육선생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빙글빙글 웃으며 내게 손님 접대용으로 비치 되어있는 델몬트오렌지 주스병을 쥐어주었다.
“자, 요거 마셔라.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고, 방학 때부터 훈련할 거니까 한 번 잘 생각해보고 얘기해줘.”
교무실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가면서 생각... 아니지, 생각이고 나발이고 자시고. 운동부? 내가 그딴 걸 다시 할 것 같아? 남의 속도 모르면서 웃는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한 체육선생님에 대한 어이없는 마음을 털어내며 교실로 들어섰는데, 마침 소영이랑 혜지와 문 앞에서 딱 마주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주스병을 놓치고 말았다. 유리로 만들어진 주스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고 주스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아 씨…”
소영이와 혜지는 짜증을 내며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가버렸고. 교실 뒷문은 깨진 유리병과 주스로 엉망이 되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일단 유리병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청소도구를 가지러 몸을 일으켰다. 그때 쑥-하고 대걸레 자루가 눈 앞으로 들어왔다.
“일단 이걸로 닦아.”
내게 대걸레를 건네 준 아이는 동그란 은테 안경을 반짝반짝 빛내며 서둘러 쓰레받기를 이용해 능숙하게 유리조각들을 그러모았다. 나는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 유리조각이 사라진 구역의 주스를 닦아냈다. 기쁘기도 하고 새삼스러웠다. 나한테 먼저 말 거는 애들이 있긴 하구나. 얘 이름이 뭐였더라. 맞다. 나연이었지. 김나연. 키가 작고 똘똘해보이는 얼굴에 반짝거리는 은테안경을 쓴 나연이는 인상처럼 야물딱진 손놀림으로 깨진 유리병을 치우고선 나와 함께 대걸레를 들고 수돗가로 향했다. 나연이는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대걸레를 어설프게 대강 문질러 대는 나를 보더니 답답한 듯 본인이 가져온 대걸레를 보여주며 시범을 보인다.
“아니, 그렇게 하면 깨끗이 안 빨리잖아. 이렇게! 이렇게. 꾹꾹 문지르면서 해야지!”
“이렇..게?”
내가 어설프게 대걸레를 흔들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김나연.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기억이 났다. 얘는 공부도 잘하고 늘 친구들 한테 둘러 쌓여 있는 애였다. 심지어 체육도 잘했던 생각이 난다. 체육시간이 겹치는 옆옆반과 편을 갈라 피구를 하면 늘 늦게까지 살아남는 몇몇 중 하나였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 중에는 나연이처럼 운동신경이 좋아서 체육 수행평가 점수도 운동부만큼 잘 나오는 애가 꼭 있었다. 괜시리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한다.
“넌 좋겠다. 청소도 잘해서.”
“엥 무슨 소리? 내가 집에서 방 드럽다고 엄마한테 얼마나 구박을 받는데.”
“..그건 세상 모든 엄마가 다 하는 소리 아니야?”
“..그런가?”
킥킥킥. 나연이와 나는 대걸레를 물에 흔들며 함께 웃었다 12월 한겨울의 수돗가는 엄청나게 추웠지만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방학을 이틀 남겨두고 김시국 체육선생님이 이번엔 교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때까지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년에 창단하는 여자축구부에 대해.
“축구부 하는 거 생각해봤어? 겨울방학 하고 2주뒤부터 훈련할거야.”
교실까지 찾아온 체육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머야? 정이지 뭐 한데? 체육샘 왜 온건데? 체육선생님 어깨 뒤로 소영이와 혜지가 흘겨보는 게 보였다. 난감했다. 제대로 생각해보기는 커녕 아예 잊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을 둘러보며 머뭇거렸다. 운동부를 다시 하는 건 싫은데.. 애들 앞에서 이렇게 주목 받으니 뭐라도 대답은 해야 할 거 같고… 그러다 교탁쪽 앞자리에 앉은 나연이가 눈에 걸렸다.
“혹시 나연이한테도 물어보셨어요?”
“김나연이? 나연이도 운동 잘하긴 하지.”
“나연이가 축구 한다고 하면 저도 할게요.”
이보다 더 잘 둘러댄 건 없다고 생각했다. 체육선생님의 권유를 받을 만큼 재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뿌듯함은 좋았지만, 교실로 찾아온 체육선생님 면전에서 축구부 권유를 거절 하는게 부담스러웠기에 대강 둘러댄 변명이었다. 저 공부도 잘하고 야물딱진 쪼고만 은테안경잡이 나연이가 운동부를 할리가 없으니까. 하물며 축구라니. 그럴 일은 없었다. 나는 곧 시작 될 겨울방학을 맞아 이 지옥 같은 교실에서 탈출하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