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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Jan 12. 2023

[가시나킥] #3 소개합시다

어색한 가시나들

#3


뜨르르르르르르르르---


전화벨 소리에 부스스 잠이 깼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이불속에서 눈만 떴다. 등 뒤로 야간 교대 근무가 끝나고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던 엄마가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들린다.


“네. 정이지 집 맞는데요. 누구시죠?”


나는 이불을 얼굴 앞에 동굴처럼 만들어 방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침 11시. 1월의 겨울방학 아침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있을 리 없다. 몸을 돌려 엄마가 수화기를 들고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엄마가 수화기를 수음부를 손으로 가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얘기했다.


“너 뭐 축구부 한다 그랬어?”


“..아.”


그날은 겨울방학이 2주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방학식 이후 오랜만에 학교에 가는 10번 버스를 탔다. 10분정도면 중학교 바로 건너편 정거장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흐리멍텅한 하늘아래 눈발이 가로로 지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이게 대체 무슨일이람. 나는 아침에 엄마에게 받은 수화기 너머 김시국 체육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축구부는 예정대로 방학식 2주 뒤인 오늘 처음으로 모였다고 했다. 아침 10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너만 안 왔다고 얼른 준비해서 학교로 바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저는 나연이가 축구 한다고 하면 저도 한다고 했었는데요.” 라고 볼멘 목소리로 말하는 나에게, “그래. 김나연이도 왔는데 너만 안 왔다고. 얼른 준비해서 와라.” 라고 답하는 체육선생님의 빙글빙글한 미소가 수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젠장. 무슨 생각으로 거길 갔을까 걔는.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가는 눈발이 더 굵어져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교무실 옆에 딸린 상담실로 들어갔다. 긴 타원형으로 생긴 테이블 뒤쪽 공간에 의자가 여럿 있었고, 나연이를 포함한 얼굴을 본적 있는 몇 명과 아예 처음보는 아이들이 섞여 앉아 있었다. 테이블 앞쪽에 앉아있던 김시국 체육선생님이 상담실 문 앞에 서있던 나를 반기며 일어났다.


“이지 어서 와라. 너가 제일 늦었어 임마.”


나는 겸연쩍게 인사를 하며 주위를 살폈다. 방금 체육선생님이 일어난 자리 옆에 모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파란색 저지 추리닝에 패딩 조끼를 걸치고 있는 그 남자는 5:5가르마의 남자치고 긴 머리를 스윽 손으로 빗어 넘기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밝은 갈색머리 때문에 좀 날티가 나는 어른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여럿 앉아있는 의자들 중에 빈 의자로 갔다.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오른쪽에 좀 떨어져 앉아있는 나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연이가 입을 꾹 닫고 미소 짓더니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며 인사를 했다. 나도 끄덕. 인사를 받았다. 넌 그래서 여기 왜 있는 거니. 물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김시국 선생님이 운을 떼는 바람에 앉아 있는 모두의 시선이 선생님에게로 집중되었다.


“자.. 이제 오기로 한 사람은 전부 모인 것 같으니까 다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기 옆에 계신 이분이 바로 축구부를 이끌어 주실 코치 선생님이시고~”


“네. 전재현이라고 합니다.”


파란 추리닝의 날티를 풍기는 어른남자가 패딩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꾸벅, 살짝 인사하며 말했다. 코치? 저 남자가? 옷만 바꿔 입으면 나이트클럽 웨이터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었다. 김시국 선생님은 이어 마치 방송 진행자처럼 말을 이어갔다.


“여기 의자 앞 줄에 앉아있는 4명이 이제 곧 2학년 될 애들이고~ 각자 소개들 좀?”


대답의 턴을 넘긴 체육선생님에게 난감함을 느끼며, 나는 내가 앉은 의자 옆으로 앉아있는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나와 가깝게 앉은 애는 본 적이 있는 애였다. 5:5 갈라진 가르마 뒤로 검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머리띠에 단발머리 가발이 붙어있는 것처럼 가르마와 머리띠의 경계가 반듯하게 나뉘어 있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오똑한 코는 얇고 길어서 미인형 얼굴인 데도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느낌이다.


“무슨 소개를 해요?


머리띠 아이가 툭, 던지며 되물었다. 중성적인 인상처럼 퉁명스러운 말투.


“아니 뭐 이름이나, 몇 반인지, 그런 간단한 소개 하라고. 이 녀석아.”


체육선생님의 말에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슥 둘러보고 대답했다.


“1학년 8반 민선규입니다.”


아, 8반이었구나. 기억이 났다. 8반은 내가 있던 10반과 체육시간이 겹쳐 종종 반대항으로 피구나 축구를 했었다. 피구를 할 때 서로 다른 성별이 공을 맞췄을 때만 아웃이 되는 룰의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대부분의 여자들이 남자들 뒤에 몸을 숨기는 반면에 죽자사자 공을 넘겨받아 앞에 나와있는 남자애들을 기습적으로 족치는 여자애가 있었다. 바로  애였다. 이름이 민선규였구나.


“저는 김나연이에요. 1학년 10반이었어요.”


민선규의 인사가 끝나자 나연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본인을 소개했다. 오늘도 은테안경을 반짝거리며. 그래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여기 나와있다. 이 한 겨울에.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연이는 베이지색 운동복을 수줍게 끌어내려 매만지고는 옆을 바라봤다. 나연이의 시선 끝에 거북목으로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애가 구부정한 인사를 했다.


“문승아..에요.. 저는 다른학교에 있었고.. 축구..하려고.. 왔습니다.”


 자세처럼 말투도 구부정하게 천천히 하는 문승아였다. 승아는 관자놀이에 퍼런 핏줄이 비쳐 보일 만큼 허연 얼굴에 콕 들어간 눈은 커다랬다. 옅은 갈색머리를 뒤쪽 아래로 질끈 묶었고, 비쩍 마른 몸에 걸친 검은색 운동복이 비싸 보였는데, 그게 굉장히 잘 어울렸다. 승아가 소개를 끝내자, 나연이와 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이유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른 학교에 있던 승아를 처음 봤기 때문에 다들 누구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얻은 것 같았다. 곧 승아와 나연, 선규를 포함한 상담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내 쪽을 바라봤다. 의자 앞줄에 앉은 4명 중 3명이 소개가 끝나고 이제 나만 남았다.


“저도 10반이구요. 정이지..입니다.”


나는 떨떠름하게 소개를 했다. 오늘은 김시국 선생님의 재촉에 얼렁뚱땅 나오긴 했지만, 꿀맛 같은 겨울방학을 뺏길 수 없었다. 눈치를 봐서 적당한 핑계를 대고 이 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자, 그럼 언니들은 소개 다 했고, 뒷줄에 6학년들, 아니지. 이제 1학년 신입생 될 친구들은 언니들이 잘 모르니까 소개 좀 할까?”


김시국 선생님이 이번엔 뒤에 앉은 애들을 향해 턴을 넘겼다. 7명이 쭉 붙어 앉은 애들이 서로 마주보며 수군거렸다. 누가 먼저 해? 니가 해. 싫어, 니가 해. 무슨 소개야.. 쪽팔려..하는 작은 소리들이 섞였다. 머뭇거리는 아이들 중 아는 얼굴들도 보였다. 내가 졸업하기 전에 초등학교에서 잠깐 축구부에서 같이 운동을 했던 애들이다. 김유빈, 김아리, 최민국, 윤주리, 이민정, 서예솔, 주가애… 차례대로 신입생 7명의 어색한 소개가 끝나자, 김시국 선생님은 만족스러운 웃음 지으며 양 손을 부딪혀 짝!소리를 냈다.


“자! 이렇게~ 11명! 이제 여기 있는 여러분은 우리 부흥중학교의 축구부 일원이 되었습니다. 모두 박수!”


김시국 선생님이 박수를 연호하자 몇몇이 마지못해 손을 마주쳤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전재현 코치 선생님도 함께 박수를 치며 양 입술을 꾹 다물고선 우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여러분은 앞으로 전재현 코치 선생님과 함께 한달 뒤에 있는 전국소년체전 예선전을 목표로 훈련을 하게 될 거 구요~”


잠깐만. 한 달 뒤 뭐라고? 나는 방금 들은 내용을 되짚었다. 전국소년체전? 김시국 선생님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일장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입을 벌리고 이 어이없음을 공감을 해주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뒷줄에 앉은 7명의 아이들은 각자 소개를 미뤘던 순간처럼 서로를 마주보며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하고 있었고, 앞줄에 앉은 3명은 눈을 반짝이며 김시국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저렇게 반짝이는 눈이라니. 내 동갑내기 3명은 지금 저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고교 이하 모든 학생 운동부에게 1년 중 가장 규모가 큰 국내 일정은 바로 전국소년체전이다. 전국소년체전은 가장 큰 국내 시합일 뿐 아니라 진학에 가장 용이한 시합 성적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 잘하는 몇몇을 모아서 나갔던 육상대회에서 운 좋게 높이뛰기 성적을 내는 바람에 경기도 대표로 전국소년체전을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대형 경기장에서의 화려한 개막식과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종목의 엄청난 선수들 사이에서 동네에서 좀 잘하는 수준의 내가 얼마나 작고 초라했는지 또렷이 기억했다.


이건 중학교에 진학한 뒤 태권도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전국시합에서 1위를 한다는 것은 곧 올림픽에서의 금메달과 다름없는 시절이었다. 나는 태권도부 전국대회 예선 2차전에서 잘한다고 알려진 서울 학교의 한 살 터울 상대 선수에게 뒤돌려차기로 얼굴을 맞아 K.O 로 패배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헤드기어가 날라갈 정도로 세게 맞아 입안이 터진 상태로 자리에 돌아와서는, 제대로 시합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감독 선생님에게 엉덩이까지 맞았었다. 나는 그때 엉덩이가 아픈 것보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굴욕적으로 패배했던 기분이 더 처참했다. 그랬다. 전국의 벽은 높았다.


그런데 전국소년체전이라니.. 나는 속이 울렁였다. 지금 막 모인 11명을 데리고 한 달 뒤에 전국소년체전 예선전을 한다고? 저 미친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주고 있어야 할까. 나는 눈치를 살폈다.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손을 들고 몸이 안 좋다고 얘기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는 대충 핑계를 대며 방학 내내 도망 다니면 되겠지.. 내가 슬그머니 손을 들려고 하던 찰나,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닌 시합도 있습니다.”



잠자코 김시국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던 전재현 코치님이 입을 열었다. 김시국 선생님은 얼굴에 미소를 박제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라는 표정(얼굴에 할 말이 잘 써 있는 편)을 지으며 전재현 코치님의 말을 기다렸다. 전재현 코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시국 선생님이 아닌 나를 포함한 11명이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나니까 키가 작지 않았다. 헌데 걷는 폼이 뭔가 똑바르지 않고 건들건들 했다. 코치의 파란 추리닝 바지가 묘하게 둥글게 휘어 있었다. 우와 사람 다리가 저렇게 O자로 휠 수도 있구나. 말 그래도 오다리였다. 격정적인 오다리의 전재현 코치님이 건들거리며 내 바로 앞까지 걸어와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고는, 패딩 조끼에 넣어뒀던 손을 꺼내 팔짱을 꼈다.


“한 달 동안의 목표는 일단 내가 너희들을 알아가는 거야. 너희도 서로를 좀 알아야 할 것 같고.”


팔짱을 낀 전재현 코치님이 11명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뒷줄 7명은 여전히 서로 눈치를 주고받고, 나연이와 선규가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반면 승아는 코치가 가까이 온 게 부담된다는 듯이 코를 긁적였다. 나는? 나는 앞에 있는 이 날라리 같은 어른이 하는 말이 뭐든지 간에 못미더웠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운동부 코치일까? 내가 봤던 사범님이나 감독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종류였기에 나는 의심스러운 마음을 품고 코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네 나 모르잖아. 내가 생각보다 재밌거든. 그리고 축구는 다 같이 재밌어야 되거든. 한 번 재밌게 해보자. 같이.”


마치 속마음을 아는 듯이 말하는 전재현 코치님의 말에 손을 들고 빠져나가려던 생각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내가 여럿이서 다 같이 재밌어 본지가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뭣 모르는 이 방안에 아이들과 이 날티 나는 어른과 함께 정말 다 같이 재밌어볼 수 있을까?


“알겠지? 일단 서로 알아가 보는거다?”


정확한 상대 없이 던진 질문에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네!” 하고 나연이가 먼저 대답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웃는 얼굴로 대답을 권했다. 나머지 아이들의 타이밍 안 맞는 “네..” 가 연달아 들려왔다. 나도 엇박자로 작게 대답했다.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은채로 조금은 기대를 담아.



#갑자기분위기전국대회
#김나연대체왜거깄냐
#가시나들나오기시작
#코치님나이트웨이터썰



나의 열다섯은
희한한 가시나들과 함께 찬란했다.
창단한 지 1년도 안 된
오합지졸 여자축구부가
찬란하게 부흥하는 이야기.
리바이벌
가시나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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