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대학교 동아리에서 알게 된 동생이 있다. 이 친구는 성격도 좋고 공부와 영어도 잘하고 다른 대외 활동도 열정적으로 참여해서 무슨 일이든 괴물 같은 아웃풋을 냈다. 하루를 48시간 동안 사는 것 같은, 인생 2회 차를 사는 것 같은 귀감이 되는 그런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이 친구는 동아리 단체 모임이나 공식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
"여기 계신 동아리 회원분들 정말 훌륭하고 뛰어나니까 이런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보면 잘 될 것 같아요."
"XX 회사 인턴/채용 기회가 있는데 동아리 회원분들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다들 잘하시니까 지원만 하시면 잘 될 거예요"
긍정 가스라이팅인가...? 친구는 신기하게 동아리원들이 훌륭하고 뛰어나다는 말을 버릇처럼 자주 얘기했다. 그러니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겠지.
다른 동아리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친구의 자유니까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내 생각과는 달라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우리 동아리원들 모두가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도 '내가 수학이나 전공 공부, 영어를 남들보다 잘한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나는 친구의 이런 말버릇이 일종의 '가식'이나 '예의'와 비슷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10년 후, 여전히 괴물인 친구와의 대화]
친구의 이런 긍정 가스라이팅은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홈커밍데이와 졸업생 모임에서도 계속 됐다.
"정말 좋은 오퍼가 있는데 우리 동아리원분들 모두 훌륭하고 뛰어나시니까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저한테 연락 주세요!"
"최근에 제가 만난 어떤 분이 이런 엔지니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우리 동아리원분들 중에 추천해 주실 만한 분 있나요?"
친구는 대학교 졸업 후에 MIT 대학원에 진학했다. Nature를 포함한 해외 Top 논문들을 쏟아내며 석박사를 4년 만에 졸업하고 현재는 스타트업 대표로 여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어마무시한 아웃풋으로 나와 친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서로 바빠 연락을 못하고 지내던 중, 작년에 회사를 강남에 있는 스타트업으로 옮기게 되면서 이 친구와 단 둘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갖게 되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10년 전부터 느꼈던 친구의 '가식'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게 됐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따뜻함으로부터 나오는 긍정에너지]
친구의 '주변 동료들이 잘한다는 믿음'은 가식이나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었고, 여러 좋은 자리에 주변 동료들을 추천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원천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친구는 실력이 뛰어났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어떤 역경이 있어도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본인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도 자기처럼 잘할 거라고 100%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80점으로 생각하고 내 주변 사람들도 대충 80점이라고 생각했다면, 친구는 자기 자신을 100점이라고 믿기 때문에 동료들도 100점이라고 믿었다.
물론 실력이 뛰어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고 해서 친구처럼 동료들을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친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이 뛰어났다.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은 단체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대학생이었다. 단순히 많은 단체에 가입하고 소홀히 활동하는 친구는 꽤 있었지만, 친구는 누구보다 바쁨에도 성실히 동아리 모임이나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서 그걸 100% 활용했던 게 아닌 가 싶다.
이렇게 실력 있고 자신과 동료들을 믿는 친구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이게 될까? 친구와 비슷한 사람들, 스스로와 동료들을 믿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모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못 믿고 다른 사람을 못 믿는 동료들 주변에는 어떤 동료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됐다.
나도 10년 만에 친구를 이해하게 되고 이런 고찰까지 하게 됐던 이유는 나를 더 많이 믿게 된 덕분인 것 같다. 작년에 스타트업으로 오고 나서 오로지 내 실력으로 증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불안에 떨기도 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나도 나름대로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뤄왔다는 걸 깨닫고 나를 더 믿게 되었고, 100% 신뢰할 수 있도록 요즘도 노력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훌륭한 친구 덕분에 사고의 확장이 일어났다. 2023년 내가 집중하고 싶은 건 딱 두 가지다.
1. 실력 키우기
2. 키운 실력을 통해 나를 믿고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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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가 요즘 핫한데 위에 말한 친구가 운영 중인, 1분 만에 논문과 Research Grant를 써주는 서비스 'Publishd'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