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록체인 개발자다. 블록체인 개발자로 일한 지 딱 1년 됐다. 오늘은 유독 힘든 날이었다. 회사에서 외부 인원들 대상으로 진행하는 블록체인 관련 세미나가 열렸고 나도 정기적으로 발표를 맡아서 했다. 오늘이 발표날이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난 뒤, 무기력함과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대중 앞에서 발표할 때 왜 이렇게 허둥지둥거리고 조리 있게 말을 못 할까?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지? 다른 동료들은 잘하는데... 다음에는 발표 준비 더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발표고, 늘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다짐해 놓고 다음 발표할 때가 되면 다 잊어버린다. 그리고 세미나 당일이 되어서 발표 직전까지 자료를 만든다. 내 게으름과 무능함에 대한 스스로의 자책이 자존감을 잡아먹은 하루였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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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곧바로 침대에 누울 작정이었다. 발표하면서 긴장했던 탓에 땀을 흘려 몸이 끈적했다. 집에 도착했지만 바로 눕기 찝찝했다. 찬물로 내 몸에 묻은 땀과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냈다. 찬물로 씻어서인지 온전히 다 씻겨내진 못했지만 발표가 끝난 직후보다는 한결 나았다. 침대에 누웠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유튜브 쇼츠를 계속 넘겼다. 한 5개만 더 봐야지... 하고 30개는 더 본 것 같다. 보다가 지쳐 카톡을 켰다. 가족 톡방에 엄마가 목감기에 걸렸다는 카톡을 봤다. 걱정이 돼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슬프고 걱정이 됐지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를 힘이 났다. 침대에서 일어나 맥북 앞에 앉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는 나름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블록체인 개발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블록체인 개발자가 되기까지 내 20대와 30대에는 참 많은 시도와 성공, 실패가 있었다. 그동안의 도전과 성공을 생각하니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 오늘 많이 무기력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까지 잘 해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행복하고 기분 좋을 수가 있겠어? 오늘 같은 날도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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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특히 중3 때 나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꼴통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반에서 가장 말을 안 듣는 남학생 3명을 '3형제'라고 이름 붙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3명 중에 한 명만 잘못하더라도 선생님과 아이들로부터 '역시 3형제야~'라는 말들로 싸 잡혀서 놀림받게 되었다.
중3 1학기 끝날 때쯤이었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중학교 최종 성적이 계산되었을 때 나는 3학년 300명 중에 약 210등으로 백분위가 상위 70% 정도 됐다. 그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생각은 없었지만 주변 친구들처럼 당연히 일반고에 가고 싶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랑 성적 비슷한 친구는 일반고 갈 생각 안 하고 공고 가는데, 너는 왜 고집부려? 일반고 가면 좋은 것 같고 공고 가면 창피한 것 같아? 너도 거의 공고 갈 성적이야~ 잘 선택해 봐."
학창 시절 별생각 없이 바보처럼 살긴 했어도 담임 선생님의 이 말은 내게 조금 상처가 됐나 보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 내 성적은 공고에 갈 만큼 낮지는 않아서 나의 바람대로 일반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를 조금 더 잘하긴 했어도 반에서 30명 중에 15등 정도 하는 성적이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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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도 참 잘 됐다. 중-고등학교 생활은 내게 암흑기와도 같았다. 엄청 행복했던 기억이 많지는 않다. 내가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건 스무 살이 되고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