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을 기회로 삼자, 막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권고사직을 당한 이후, 내 삶은 또 정신없이 흘러갔다. ‘정신없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이력서를 고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휴식도 하고, 멘털도 회복하는.. 물리적인 바쁨을 의미할 뿐, 크게 우울하거나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긍정은 나란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이니까.
마음먹고 늘 중간은 해냈던 경험을 방패 삼아 최대한 쫄지 않으려 애썼다. 괜히 운전하면서도 세상에 대고 소리쳤다.
“그래. 내가 보여줄게! 못할 게 뭐 있어 C.."
그렇게 약 두 달간 허공에 외쳤던 세상은 생각보다 말이 없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도전했던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냉정했고 차갑게 느껴졌다.
채용공고 자체가 많이 줄었고, 인재의 기준은 끝없이 높아졌으며, 근무 환경은 열악했다.
약 31번의 이력서 수정과 서류 지원 87회, 그중 8번의 1차 면접..
(참고로 큰 회사들은 역량테스트나 인적성검사는 필수고, 면접은 보통 2차, 3차까지도 있다)
이 수치는 지금 느끼는 심리적 예상치일 뿐 정확하지 않음을 양해 바란다.
하지만 정말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많은 노력으로 세상에 일원이 되려 애쓴 건 사실이다.
나는 회사에 대한 기준이 높거나 욕심이 많지는 않아서 정말 다양한 회사에 편견 없이 지원했고,
어디든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를 반기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8번의 면접이 꽤 많아 보이겠지만, 별 실속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곳은 나의 스펙을 아쉬워했고, 너그러이 손을 내미는 작은 회사들은 내가 별로라고 느낄만한 조건을 함께 제시했기에 잡을 수 없었다.
“요즘 회사 밖은 지옥이라던데.. 기업들도 채용을 대폭 줄였다던데..” 하는 말들과 답답한 뉴스 기사들만이 매일 반길 뿐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놓기 싫은 자신감과 함께 이력서를 하나 둘 고쳐나가는 일상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런 긍정의 힘이 작용한 것일까?
이후 수많은 지원과 면접의 과정을 지나 한 곳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부모님께 얘기하면 무조건 좋아할 만한 소위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그런 곳이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내가 그동안 쌓아온 포트폴리오와는 결이 조금 달라서 들어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지원을 망설이기도 했던 곳이었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좋은 회사인데 넣어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지원했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느꼈던 막막함들이 쌓여 어쩌면 막연한 용기를 주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질러본 곳에서 내 이름을 메아리처럼 되돌려 주면서 내 새로운 일상은 다시 시작됐다.
요즘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너무 가려. 아무 직장이나 들어가서 일하면 되지~ 너무 따져서 문제야.”
뭐 틀린 말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나 또한 일부 동의한다.
객관화는 되지 않은 채로 좋은 회사만 동경하고,
그런 곳이 아니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그런 청년들도 더러 보았으니..
하지만 한 번쯤 그 이면도 봐주길 바란다. 모든 청년이 그렇지 않을 텐데 왜 이런 세상이 온 걸까?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혀를 차는 이유에 대해,
과도한 스펙을 쌓으려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음에도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딱 한 번씩이라도 함께 바라봐주길 바란다.
그런 관심들이 쌓이면 또 어떤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벌써 이곳에 다닌 지 3개월이 넘었다. 예상보다 힘들고 정신없는 적응의 기간이었지만 이제는 꽤나 든든하고 자존감을 안겨주는 회사로 느껴진다.
나의 압축된 이 작은 이야기가 옛 세대들에게는 젊은이들의 고충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앞으로의 삶이 막막한 많은 청년들에게는 막연한 용기로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