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9년, 24살에 동전노래방 사업을 시작한 나는
영업 1년 만에 뜻밖의 위기를 마주했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의 등장
수많은 고객들이 머물며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던 공간은 고요함으로 가득 차고,
내 사업은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
빚이 쌓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을 지배했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하루를 그저 보내고 버티면서 빠르고 똑똑하게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었다.
하지만 당장 투자할 자본도 없었고, 무언가를 배우기엔 내 빚이 불어나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우선 가게를 정리하고 취업을 하는 것 만이 내가 쥘 수 있는 선택지였다
대학교 전공에 아무런 흥미가 없던 나는 아주 적극적인 자세로 공부를 멀리했다.
불효에 가까운 학점을 가진 내가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면 수능을 다시 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공부대신 딴짓을 많이 했다.
도서 출판, 장사, 아르바이트도 서비스, 판촉, 유통 심지어 상하차까지 거의 모든 종류를 섭렵했다.
다양한 경험을 살려 마케팅 회사에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사한 나의 첫 직장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였다. 난 수습 기간 동안 SNS에 업로드될 원고를 쓰게 되었는데, SNS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달았다.
흔히 인플루언서라고 생각하는 10만, 100만이 안 되더라도 협찬과 광고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SNS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플루언서가 되기엔 내 자체가 콘텐츠가 될 만큼 매력적이거나 외모가 뛰어나지 않았고 특별한 콘텐츠를 만들 만큼 딱히 전문성을 가진 분야가 없었다.
출판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단순히 일기를 엮어서 냈던 독립출판물이었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기엔 턱없이 부족한 글솜씨였다.
그렇게 내 월급의 절반은 채무상환에 나머지 절반은 월세, 보험료 등등 생활비로 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생활을 하다가 수습 기간이 끝나고 조금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조금 더 나은 회사에는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우리 부서에는 블로그를 잘 활용하여 여러 통로로 수익을 내고 계신 분이 계셨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망설일 이유 따윈 없다.
나는 당장 수익화용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웃 수와 방문자수가 그리 많지 않은 내 블로그로도
협찬이 들어오고, 블로그 체험단으로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도 많았다.
사람들과의 소통, 표현의 자유, 그리고 뜻밖의 수익까지 모두 블로그를 통해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인플루언서 풀에 살짝 발을 담그기만 했을 뿐인데 내가 한 달 동안 받은 혜택은 80만 원이 넘었다.
속눈썸펌, 염색, 맛집, 카페, 마사지 등등..
블로그에 글만 써주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세상을 알게 되고
내 꿈은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물론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에 존재하는 단점을 잘 알고 있다.
사적인 시간이 제한되고,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비판과 압박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 자신을 조정하고, 가끔은 자아를 잃을 수도 있다.
그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복잡한 현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겪어보지 않은 것을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두려움을 너무 많이 생각하는 순간, 미래를 놓치게 될 뿐이다. 나는 동아줄을 잡는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나의 계획은 명확하진 않다.
내가 어떤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통해 나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무작정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 등 모든 플랫폼을 이용하겠다는 생각만 있다.
그걸 어떻게 다 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게으르기엔 나는 너무 절박하고
시선을 거두기엔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너무 매력적이다
뭐..
뭐든 열심히 하면 남는 게 있겠지
혹시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다면
나의 도전에
행운을 빌어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