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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명 고민중 May 19. 2024

프랑스어를 배우다 1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즐거움

매주 토요일 프랑스어를 배우러 문화원에 가기 시작한 지 한 3~4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왜 하필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가족 외에는 내가 배우고 있다는 것을 모르니.(싱긋)


주변에 굳이 알릴 이유도 없지만 일부러 내색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프랑스어를 시작하기는 쉬워도 꾸준히 하기는 어려운 언어일 수 있어서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모두의 의견은 아니므로…)그런 까닭이라 이유를 든 것은 마침 최근 신청한 레벨수업이 수강인원 미달로 폐강되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수업에서 같이 듣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여러 가지 사유로 다음 과정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아 강의 개설 최소 인원 3명을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계속 수강을 희망하는 수강생들에게 그다음 단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지만, 먼저 신청한 과정과 진도가 두 달 분량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폐강 이후 합반 첫 수업에 가는 날 아침에는 절로 눈이 떠졌다. 앞부분을 미처 배우지 못한 채로 월반을 한 터라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컸었나 보다. 수업에 참석하기 전까지 직전의 진도를 혼자 학습해 보자는 싶어 교재를 펼쳤다. 아침도 안 먹고 늦잠 자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중간고사 준비를 제대로 않다가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것처럼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 부분이 어디인지 하나씩 읽으면서 찾아보았다. 연초에 내 수준에 맞는 DELF를 응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기 때문일까. 어떻게든 시험을 대비하려면 배움을 멈출 수가 없다. 잠시라도 쉬면 다시 시작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는 부담도 컸고… 다행히 일부이지만 직전 진도를 미리 공부한 것이 첫 수업에 적응하는데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고, 이번 과정을 계속 들어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고백하자면, 이번이 프랑스어를 난생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배우질 못해서 시작했다가 멈추고 반복하길 세 번째이다. 직장, 육아 등등 핑계를 댈 수 있어도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할 때도 꾸준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제일 컸다.


몇 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 꾸준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보다는 늦게라도 다시 배우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스스로 어리석음을 내보이는 꼴이지만, 처음 배울 당시였던 삼십 대에도 이십 대에 시작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는데, 사십 대인 지금은 삼십 대에 시작했을 때 계속 붙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아쉬운 만큼 더 즐겁게 배워야지.


6년이 지난 만큼 예전에 배운 내용은 거의 기억에서 사라져서 다시 생짜배기 초급반으로 시작하였다. 그래서인지 조급해지고, 빨리 많이 습득해서 잘하고 싶은데, 욕심이 과한 터라 잘 되지 않는다. 하하하. 단어를 외우거나 문장을 이해하는 데 처음 배울 당시에 느꼈던 그 속도가 나길 바라는 것은 과욕인가 싶을 만큼 천천히 나아간다.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 가보겠다고 마음을 다듬어 본다.


오십 대를 바라보고 있어도 여전히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서 감사하다.


아!!!!!!!!!!!!! 드디어 알았다. 프랑스어가 왜 즐거운지를 알았다.

혼자서 용을 쓰며 발음하는 것도 즐겁고, 골머리 아파하며 아직 내 수준에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아리송송한 연습문제를 풀어보고 정답을 찾아보고, 오답엔 아쉬워하는 과정까지도 즐겁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 그 마음을 따른 나의 선택으로, 내 시간과 열정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나라는 존재가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Une Chose(하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버스럽기도 하고, 멀리 가는 것 같지만,

과연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자유 의지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될까?

일이 바빠서, 누가 시켜서, 내키지 않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수많은 ‘Devoir(의무, 숙제)’에 둘러 쌓여 있는 내 삶에서

프랑스어는 몇 안 되는 ‘Vouloir(바라다, 열의)‘라는 소중한 영역인 것이다.

목욕하다 부력의 원리를 생각해 낸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며 뛰쳐 나왔던 것처럼은 아니지만,

샤워하다 갑자기 깨달음이 와서 나서 급하게 덧붙여 본다.

‘주체로서, 능동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무엇’

그게 살아가는 데 힘이 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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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일상

일요일 오후, 신축한 구립도서관에 갔다.

주말 특별체험에 참여한 큰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머물까 하다가 인근에 도서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주차도 편하고 열람실도 깨끗해서 다시 와야겠더라.

다음 한 주를 잘 지내고 난 후, 마음과 체력에 여유를 만들어

주말에 공부하러 와야겠다고 속으로 계획을 세워 본다.

기쁘게 잠들 수 있어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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