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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Oct 20. 2022

프랑스 문화원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을 살고 싶다

며칠 전 평일 낮, 시내에서 회사 업무를 보다가, 다음  미팅까지 잠깐 시간이 비었다. 귀사나, 귀가하기가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이라도 잠깐 볼까 했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 날씨도 좋은 데 황성공원 산책길을 한 두 바퀴 걷자. 


소나무 향이 온 사방에 가득했다. 향에 취해 숲길 오솔길을 휘청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내 뒤를 따라오던 두 중년 여인들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낯설지 않은 노래가, 나의 휘청거림을 멈추게 했다. 유튜브에 선지 어디선 지 모르겠지만, 그녀들은 어떤 샹송을 볼륨 높여 들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 이거 샹송 맞지? 참 좋다. 근데 이 노래 제목이 뭔지 알아? 이 독백하는 남잔 누구야? 목소리 참 근사하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나는 돌아서서 그녀들에게 용기 내어 말해주고 싶었다. 그 샹송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좁쌀만 한 상식을. 그러나 제정신을 차리고 얼른 가던 길을 마저 갔다.


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 샹송 제목은 <빠로네 빠로네>. 여자 가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노래 사이사이에 중저음톤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남자는 알랭 드롱입니다. 가사 뜻은 정확히 다 모르지만, 대충 ‘사랑의 실연(失戀)과 남자의 공허한 넋두리’에 관한 노래랍니다...


그 샹송 때문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산책길 내내, 나와 함께했다.


1960년 대 후반, 서울 경복궁 건너편에 ‘주한 프랑스 문화원’이 들어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화원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영화관, 세미나실, 전시 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숭례문 인근으로 이사했다고 함) 나는 불어라고는 간단한 인사말도 제대로 못했으나, 1970년 후반이던 고등학생 때부터 그곳을 들락 거렸다.


불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한글 자막은 없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고급 진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었기에 자주 갔다. 당시는 이 땅의 모든 문화계(언론, 영화, 연극, 음악 서적...)가 정부 당국으로부터 심한 검열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문화원은 당국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불가침 지역이었기에, 나는 소심한 희열을 느끼며 스스로 뿌듯해하곤 했다.


독하고 못된 청와대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20대 때 문화원에 갈 때는 그때마다 청와대 쪽을 향해 한번 째려보곤 했다. 그 치기 어린 행동도 내 기억 한 구석에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문화관에선 주로 흑백영화를 보여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평일이었던 기억이 나지만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가물가물... 좌석은 한 50석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흑백영화였던 <무도회의 수첩> <금지된 장난> <카사블랑카> 등을 봤다. 컬러로는 <태양은 가득히> <암흑가의 두 사람> 등등. 수 십 편을 보았다. 비록 불어에는 약했지만, 영화라는 게, 대사는 잘 몰라도 대충 알 수 있는 종합예술이라, 그럭저럭 즐겼다.


관람 후, 좀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당시 국내 최고의 대형 서점이었던 종로서적을 찾았다. 거기에서 제목도 모르고 방금 본 영화의 스토리를 역(逆)으로 추적해, 그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는 식이었다. 주인공이 누군지, 감독이 누군지 등등.


그런 방법으로 알게 된 배우가 장 가뱅, 이브 몽땅, 장 폴 벨몽도, 알랭 드롱 등이었다. 한국의 김승호, 최불암 같은 호통함과 중후한 이미지의 장 가뱅.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못하는 게 없었던 샹송 <고엽>을 부른 가수로도 유명했던 이브 몽땅. 스티븐 맥퀸처럼 거칠 연기를 보여 주던 장 폴 멜 몽드가 나훈아였다면, 알랭 드롱은 준수한 외모 때문에 남진으로 비유되기도 했었다.


당시 전 세계의 가장 뛰어난 미남을 네 글자로 ‘알랭 드롱’이라고 썼다. 알랭 드롱은 지금의 브래드 피트였고 레오나르도 드 카프리오였으며 현빈이었다. <태양의 가득히>라는 영화에서 그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살인범으로 나온다. 영화 종반부에 그의 살인이 발각되기 직전, 영화를 보던 이들이(특히 여성들) 토해내던 안타까운 한숨 소리. 그는 살인범이었지만 많은 여성들로부터 동정받고 사랑받았던 불세출의 배우였다.


여성 팬들에겐, 억울하게 살해된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은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가해자에 대한 연민만 존재했다. 그래서 범인을 단죄하기보다는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괴이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알랭 드롱의 수려한 외모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장 가뱅과 같이 했던 <암흑가의 두 사람>. 제목만으로는 한 때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범죄 영화 중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인죄 선고를 받고 단두대로 향하던 알랭 드롱. 그때 두려움에 흔들리는 그의 두 눈 클로즈업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되었고 또한 두고두고 여성 관객들을 눈물짓게 했다.


황성공원 숲길을 걷다가 우연히 목소리로 조우한 알랭 드롱. 평생 늙지 않을 것 같은 그도, 벌써 80대 중반이라고 한다. 나도 한해 한 해가 다름을 몸으로 느낀다.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은, 이 산책길 옆길에 무심코 서 있는 소나무들뿐인가? 그래도 나는 소나무처럼 그냥 그렇게 단지 오래 살고만 싶지 않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로 인해 내 청춘의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을 살고 싶다. 길지 않더라도... 그런데 그날 그 추억을 되씹고 난 이후로, 오솔길 소나무 향이 내음이 아닌, 울림으로 한참 동안 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지하게 이상한 일이었다. 아련하지만 공허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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