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운전사가 운전하더라도...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던 어제. 지난밤 꿈을 꾸었다. 명확하게 그 형체를 그려낼 수는 없지만 ‘초인’이라고 생각되는 존재와 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개구리처럼 잠에서 깨고 나니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희미한 기억의 아지랑이는 그 초인이 플라톤, 니체, 신채호, 이육사가 말하던 그 초인 중에 하나는 아니었을까 하는 지레짐작만, 그나마 그것도 얄팍한 내 독서의 잔영이었을 것이다.
집 주차장 옆에 두세 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몇 해 전에 이사 와서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이런저런 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어제 아침 텃밭에서 불그스레한 꽃송이들이 눈에 띄어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홍매화였다. 화사한 꽃 몇 송이가 보는 이의 기분을 북돋아 주었다. 맞다. 날이 참 따사로운 경칩이다. 경칩에 만난 홍매화. 이렇게 겨울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려던 가물거리는 기억 하나가 꽈리를 틀었다.
70년대에 서울 안국동 인근엔 창덕여고(高). 수송중, 중동중고, 덕성여고, 경신고, 보성고, 홍대부고 등 여러 학교들이 소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곳을 지나는 전설의 버스가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205’ 번 북부시영버스였다. 배차 간격이 촘촘하지 않아 안국동 인근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그 버스를 타고 등교라도 하는 날에는 왠지 종일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학생들이 사력을 다해 그 버스를 타려고 했던 이유는 그 버스 정류장들이 자신들의 학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버스들은 멀리 돌아가거나 학교와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내려 주었기에, 205번 버스는 탔다는 것은 안국동 학생들에겐 네 잎 클로버를 득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공급보다 수요가 엄청나서 여간 독한 마음과 그날의 행운이 뒤따르지 않고는 타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승차를 했더라도, 그때부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다들 시루떡이 되고 만다. 시루떡들의 ‘아이고’ 소리를 뒤로 한, 차장(안내양)의 엉덩이 힘이 차문이 되고, ‘오랏이’하며 차벽을 두들이면 버스는 출발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법인 말 그대로 ‘개문발차’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잠시 후 운전수의 현란한 S자핸들 조작은 시루떡들을 가지런히 정돈한다. 그 덕택에 문 쪽이 있던 시루떡들은 골고루 안쪽으로, 그 찰나에 위험하게 차 밖 문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차장은 무사히 차 안으로 들어오고 그 제서야 문이 잠글 수 있었다. 이렇게 해야 다음 정류장에서 몇 명의 학생들을 더 태울 수 있기에, 이 일은 등교 때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 대목에서 당시 그 버스의 운전대를 잡은 이의 본성이 선하고 너그럽게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설사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관성의 법칙’을 아침마다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꿈꾸던 205번 등교를 가뭄의 콩 얻듯 힘들게 얻곤 했다. 오늘 아침 그 운전수가 내 생각의 영역에 불현듯 들어 선 것은, 그의 운전 실력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곧 있을 모 정당 대표 선거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말의 폭력과 혼탁함을 보면서, 학폭을 한 아들이나 그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참 최선(?)을 다한 당시 검사 아버지의 눈물겨운 부정. 3·1절 기념식에서 조선이 35년간 국권을 침탈당한 원인을 일본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대통령의 망언. (우연일까? 이것들이 한 사람에 의해...) 당일 베란다에 일장기를 건 목사의 ‘우리의 근대화는 일본 덕택’이라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내가 쉬는 숨마다 다 한숨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요 며칠 내가 겪고 있는 우리 사회는, 내 어린 시절 205번 버스 안처럼 ‘아이고’가 절로 나게 한다. 그것들이 아직도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치솟는 물가 등 모든 일상의 불편함에 더해, 그나마 하루 일이십 분 정도 시청하던 뉴스에서 마저도 눈과 귀를 닫고 지내게 한다.
나는 애당초 이 모든 것을 리셋시켜 줄 수 있는 어젯밤에 꿈에서 만났던 초인을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운전수를 바라는 것도 언감생심일까? 이도저도 불가한 것들이라면... (오늘 왜 이런 망상을 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봄을 타는 것일까?)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시루떡 버스가 겨울이라면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버스 기사는 홍매화일 수도 경칩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단지 그것은 초인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러려니’ 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에서 기인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 시루떡 같은 세상이지만,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경칩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홍매화는 핀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어제 경칩을 보내고 나는 일단 ‘버티기 자세’에 들어가기로 보기로 맘먹어 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독일의 디트리히 본 훼퍼 목사의 ‘미친 버스 운전사의 비유’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식자우환이다. 최근 김연수 작가의 글들을 읽고 있다. 그의 글에 이런 말이 있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
<경칩날 아침에 만난 홍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