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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Jul 16. 2023

입사 3주차, 대표님과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

안녕하세요 맥스, 다음 주에 저녁식사 겸 미팅 가능하신가요?


저번주 금요일 대표님에게 받은 메신저다.(맥스는 필자가 회사에서 쓰는 이름이다.) 곧 주말이라는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대신 '내가 뭘 잘못했나?', '일을 못한다고 말이 나왔나?', '인사를 안 한 적이 있나?' 등등 온갖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입사 2주 만에 찍혔을 리는 없는데, 아무래도 대표님과 단둘이 식사한다는 게 꽤나 부담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다른 인턴 분도 같은 제안을 받으셨다 해서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주, 대표님과  단둘이 고깃집에 갔다. 저녁으로 뭘 먹고 싶냐는 대표님의 질문에 고기밖에 생각이 안 나서였다. 식사자리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또, 내가 말로는 표현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까 봐 내가 쓴 글 몇 개도 보여드렸다. 글 두세개쯤 보여드렸을까, 대표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글에서.. 좀 주눅들어 있는 게 느껴지네요?" 글에 주눅이 들어 있다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지만 납득이 되었다. 




  1년쯤 전이었을까. 나는 전공(공대)을 살리는 대신 다른 분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공학이 유망하다지만, 내가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평생을 일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하고 있는 인턴도 공대 쪽이 아닌 전략 마케팅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선택에 확신을 가졌던 건 아니다. '괜히 나만 힘든 길을 택한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착실하게 공대의 커리큘럼을 밟아 나가는 동기들에게 열등감을 느꼈었는데, 그러한 마음이 글에서도 드러났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대표님은 여러 사례들을 말씀해주셨다. 수학과 졸업 후 기자를 하다가 현재는 vc에 몸담고 있는 사람, 기계공학과 졸업 후 현대자동차 전략 마케팅팀에 있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자신도 이른 나이에 창업을 시작했다며, 공대생들의 대표적인 진로인 대기업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택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또 적성이 다를 뿐이지, 내가 동기들에 비해 부족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는 국어와 영어 같은 언어 분야에서 뚜렷한 강점을 보이는데, 이를 공대생이라는 페르소나와 결합하면 훌륭한 융합형 인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시간 반 가량의 저녁 미팅을 돌아보니 사실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융합형 인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내가 동기들에 비해 부족한 게 아니라 적성이 다른 거라는 생각도 나 혼자서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그것도 한 회사의 대표가)이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불어넣어 준 건 처음이었다. 6개월이라는 긴다면 긴, 짧다면 짧은 인턴 기간 동안 많은 걸 경험하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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