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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Aug 27. 2024

누구나 결국 죽는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서평

  한동안 수필을 읽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친구에게 좋은 수필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이번 서평은 책의 다음 두 구절들로 시작하고 싶다.


사람은 태초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난다지만, 모두가 동일하게 가지고 태어나는 속성이 있다. 바로 유한성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모두들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기도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가장 자명한 사실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눈앞의 문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하고, 내일이 있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일은 당연히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는, 지극히도 일차원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 미치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보다는, 사회적 기준이나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좇으며 살아왔다. 결국 부와 명예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미치의 표현대로라면 '많은 꿈을 두둑해진 월급 봉투와 맞바꾼' 셈이다.


  어느날 티비를 보던 그는 대학 시절 존경하던 은사님이었던 모리 교수님이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후 매주 화요일마다 모리 교수님을 찾아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리 교수님은 방문할 때마다 병약해지지만, 미치에게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책의 구절들과 함께 모리 교수님의 '인생 수업'을 일부나마 함께해보자.



“테드, 이 모든 게 시작됐을 때 난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 세상에서 그대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보람 있는 삶을 살 것인가?’하고 말이에요. 난 원하는 대로 살기로, 아니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기로 결정했어요.

→ 내가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어떨까? 과연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생을 마감한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니, 모리 교수님의 지혜와 품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글쎄, 무엇보다도 우리 문화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어. 그러니 스스로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것을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것보다는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해야 해.”

→ 사람들이 온라인, 특히 SNS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고착화되는 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나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터치 몇 번이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그 절반은 자고 있는 것과 같지.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미치,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어. 경력, 가족, 또 주택 융자금을 갚아 낼 돈은 충분한가, 새 차를 살 여유가 있는가, 고장난 난방장치를 수리할 돈이 있는가 등등…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인가?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가? 뭔가 빠진 건 없나?’ 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 목표를 세울 때, 이것이 과연 진정한 내 목표인지, 아니면 단지 사회가 설정해준 목표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같은 목표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생각이 아닌, 사회적 통념이 제시하는 목표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인생의 방향 설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라는 조언이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삶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삶을 소중히 여기게 되지요. 세상에서 보낼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루하루를 최우선으로 삼게 됩니다.

→ 누구나 죽는다. 이왕 죽을 거라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라도 알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가끔  만약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면, 지금처럼 사는 것이 맞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들조차도 정신없는 일상에 치여 잊어버리게 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행복을 가볍게 포기해 버린다. 물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죽음을 앞두고 돌아봤을 때 ‘나는 제대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죽을 준비란 어떻게 하나요?”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는 거지.”

루게릭 병에 걸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처지임에도 ‘나는 행운아’라고 말하는 모리 교수님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람 있게 살아가야겠다. 어깨에 작은 새 하나를 올려놓아 보자. 죽음을 앞둬도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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