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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May 19. 2023

'열정'과 '멈춤' 사이

붉은색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

  장미, 투우에서 휘두르는 깃발, 한때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붉은 악마'에 사용된 붉은색은 열정, 정열을 나타낸다. 하지만 붉은색에는 이 말고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보는 신호등, 도로에 있는 정지 표지판, 축구에서 퇴장을 의미하는 레드카드에도 붉은색이 사용된다. 그런데 여기서의 붉은색은 앞의 그것들과 쓰임이 좀 달라 보인다. 이때 붉은색은 '멈춤'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한 색깔이 '열정'과 '멈춤'을 동시에 의미한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는 대체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걸까?


  코로나 시국 이후 '갓생'이라는 트렌드가 새롭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갓생'이란 신을 의미하는 '갓'(god)과 인생의 '생'을 합친 단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 즉 아무나 살 수 없는 성실하고 밀도 있는 삶을 지칭한다. '갓생'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검색해보면, 정말 몸이 두 개라도 힘들 법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욜로'(YOU ONLY LIVE ONCE) 열풍에 다소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이기에, 지금처럼 진취적이고 계획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는 문화가 퍼지는 것 자체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갓생'과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유행어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열정과 성취감을 상실하는 현상인 '번아웃'인데, 이는 우울증, 무기력함, 불안감을 동반한다. 여기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풍조인 능력주의가 한몫 했다. 개인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능력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실패는 오로지 내 탓'이라는 생각이 청년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잠을 줄여가며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잠깐 쉬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다 보니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살다 보면 힘든 순간들은 계속 찾아온다. 아무리 고민하고 발버둥 쳐도 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심연으로 빠지는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이. 그럴 땐 잠시 멈추자. 당면한 문제에서 주의를 분산시킬 다른 것들을 찾아 나서자. 산책, 낮잠, 독서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기계에도 꺼두는 시간이 필요하고 충전이 필요한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결국 붉은색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열정은 멈춤이 있어야만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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