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동료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도 동물을 키우고 있고, 매일 일에 치이면서도,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손님이 오면 너무 귀엽다며 사진을 찍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보호자가 진상을 부리면, 금방 짜증을 내며 속상해한다.
미국에서 일을 한지도 벌써 6년이 되어가는데 아니 7년인가? 그동안 코로나를 겪었고, 코로나 동안에는 직접 대면을 안 하고 동물들만 진료 후 보호자와는 전화로 진료에 대한 소통을 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집에 격리되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동물을 입양하기 시작했고, 코로나 시점의 대부분의 진료가 초기 백신과 예방진료였다. 아마도 외출은 힘들고 집에서 외롭고, 정부에서 얼마간의 지원금이 나오며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재작년 후반부터 갑자기 진료가 줄기 시작했고, 작년에서 걱정이 될 정도로 진료수가 줄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부터 갑자기 다시 입양도 늘고 환자수도 늘기 시작해, 어떤 날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스케줄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이 우선시된다. 가끔 손님들이 급하게 연락을 해서 혹시 진료 가능하냐고 하면, 스테프들은 뭐가 그렇게 급하냐며 오늘은 너무 바빠 안된다 선을 긋는다. 내가 키우는 아이들이 아프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지만, 남의 일이 되면 한 다리 건너서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보는 하버드를 나온 머리 좋은 수의사는, 자신이 키우는 네 마리의 동물들은 극진히 보살피지만, 손님에게는 한없이 퉁명스러운 수의사이다. 남편과 아이가 있지만, 동물들이 아프면 열일 재치고 스페셜티 병원의 전문의를 찾아간다. 가끔 그가 일하는 로케이션에서 오는 손님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 받아주는 우리 병원으로 정착하며 '거기서 일하는 여자 수의사는 우리 개한테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40대 초반에 파킨슨 병을 진단받은 한 정신과 의사가 쓴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읽으면서, 과연 이십 년을 넘게 파킨슨이라는 무서운 병을 겪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에 대한 공감을 머리로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병과 겪으며 여러 권을 책을 써내고, 삶의 빛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다만 그역 시도, 한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겪는 부당함을 묵묵히 감당한 사람이기도 하다. 똑같은 의대에 다니는 남편은 일만 잘하면 되고, 여자이기에 어떤 직업이냐와 상관없이 일과 가정을 모두 완벽히 챙겨야 하는 그런 의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잠깐씩은 화가 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한 친구가 있다. 같은 수의사이고 우리 병원에 마케팅을 하러 찾아오던 한 약품회사의 직원이었는데, 말도 잘 통하고 해서 어느덧 술자리도 하는 친구가 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며 고군분투하던 그는 어느 날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이년만에 한국에 가서 만난 그 친구는, 술자리에서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한 상사에 대한 울분을 술자리 내내 토로했다. 얼마나 갑갑하면 그럴까 싶은 마음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 얘기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교차하던 술자리였다.
그 후에 만난 친구는, 아마도 그 회사에 다니며 생긴 넘쳐나는 불평을 알고 지내던 수의사 그룹에서 토로하다 결국에 제외된 듯했다.
이년전 한국에 갔을 때 만난 한 원장님께 그 친구를 소개했고, 친구는 그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면 가끔 뜬구름 잡는 중학교때 했던 고민들 같은 얘기를 하던 친구가 좀 현실의 삶에 정착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있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데는 지식과 경험이 모두 중요하다. 특히 우리 일은 지식만큼의 기술적인 경험도 필수적인데, 십 년 이상 약품회사 일을 했던 친구는 당연히 기술적이 부분이 부족했고,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병원의 실세인 직원과 부딪히기 시작했고,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 듯하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항상 말로는 자신은 최고이고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환상 속에서 사는 것 같은 그 친구의 얘기가 가끔 얘기하는 그의 현실과 충돌을 일으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이나 소극적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겁쟁이였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할머니 치마뒤에 숨곤 했다. 이제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만 큰 대범한 척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했어도, 아직도 사람들이 많을 곳을 가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꺼려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친구가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살지 않으면서-나는 사람들과 일을 하면 그게 보완될 거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