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는 소리
9월 9일 아침이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새벽까지 지붕을 두드렸다. 처음엔 가늘게 떨어지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굵어졌다.
여름 내내 선풍기를 틀고 얇은 이불 한 장으로도 더웠는데, 어젯밤은 달랐다. 창을 열어두니 서늘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이불을 돌돌 말아 끌어안고 깊게 잤다. 몇 달 만에 제대로 잔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공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습도는 높아서 끈적하지만 온도는 확실히 낮아졌다. 평소처럼 반팔을 입고 나섰다가 팔이 시려서 다시 돌아와 긴팔을 챙겼다. 매년 이런 식이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나 놓친다.
곧 아침저녁이 쌀쌀해질 것이다. 언제 그렇게 더웠나 싶을 정도로 선선해질 것이다. 에어컨을 치우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고, 반팔을 정리하고 긴팔을 앞쪽에 걸어둘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상의 의식 같은 것들이다.
비가 그치면 하늘이 높아진다. 구름이 하얗게 떠다니고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나무들이 조금씩 색을 바꾸기 시작한다. 은행나무가 제일 먼저 노랗게 물들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진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스무 살에는 일 년이 정말 길었다. 삼십 살에는 적당했다. 마흔이 넘으니 빠르다. 계절이 바뀌는 속도도 함께 빨라지는 것 같다. 여름이 끝나자마자 겨울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시간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어린아이에게는 관대하고 어른에게는 인색하다. 하루 이십사 시간은 똑같지만 체감하는 속도가 전혀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진다.
창밖 빗소리가 서서히 잦아든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곧 완전히 그칠 것 같다. 비가 그치고 나면 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또 가을이 온다. 내 마흔몇 번째 가을이 조용히 다가온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본다. 9월이 시작된 지 열흘도 안 되었는데 벌써 올해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고 새해가 올 것이고, 또 한 살 더 먹을 것이다. 시간의 가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남자는 나이를 숫자로 센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여자들처럼 애매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정확한 숫자가 더 편하다. 그것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빗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고요한 정적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창밖에서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새들도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또 한 해가 간다. 특별히 아쉽지도 않고 서럽지도 않다. 그냥 그렇다.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바뀌고, 나는 여전히 여기 앉아 있다.
By, 공감아티스트 오지훈 (2025.09.09 비 오는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