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를 내려놓는 예술인은 빛날 수 없다'
무대를 연출하는 기획자로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나에게 늘 가르침을 준다. 기획자로서도, 예술가로서도 나는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예술가의 상상력이 현재에 안주할 때 작품의 질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미래를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훌륭한 무대란 그저 극장을 대관하고 상연 날짜를 정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품을 올리는 날까지 철저한 준비와 시행착오, 리허설, 각오 등이 없다면 좋은 작품은 절대로 탄생할 수 없다.
얼마 전, 취업난을 비롯한 대졸자들의 사회 진출 문제를 놓고 예술계 대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용기를 전해달라는 한 특강에 초청받았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통계 수치와 데이터를 준비해 연단에 올랐지만 연신 하품을 해대는 학생들의 눈빛은 표현 그대로 ‘죽어있었다.’ 나는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제쳐 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대학이란 무엇인가요?”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들 가운데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고, 용기 내어 답하지 못했다. 나는 재차 다른 물음을 던졌다. “그럼,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자유롭게 발언해주세요.” 또다시 정적이 흘렀고 단 한 명의 학생도 답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졸업과 사회 진출을 코앞에 둔 예술계 학생들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이르면 초등학교, 늦으면 고등학교 때부터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도 대학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다는 것은 분명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예술이란 절대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기에 예술이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예술인들의 다양한 해석과 개성 있는 정의를 필요로 한다. 대학을 두고 ‘취업자 양성소’라는 자조 섞인 정의를 내린 학생이 단 한 명만 있었어도 나는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아와 내면을 ‘표현하는 일’을 생업으로 추구하겠다는 이른바 ‘예술전공생’ 수백 명 가운데 단 한 명도 표현하지 못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예술인으로서 크나큰 책임감과 아픔을 느꼈다.
강의실을 나서기 직전,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예술에 대한 고뇌와 창작에 투자해도 예술인으로서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인 문제들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술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뇌보다 예술적 고찰과 성찰, 그리고 예술인으로서의 자기반성을 우선시하겠다는 맹세이자 다짐이며, 이를 실천하지 않고서는 그저 위선일 뿐입니다.”
자본제일주의와 그로 인한 윤리의식 결핍에 잠식된 우리의 사회 구조는 심각한 취업난과 사회적 박탈감을 조성하여 젊은이들을 옭아매고 있다. 우리 예술가들은 역사적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빛을 발해 온 존재였다.
자신을 위해, 나아가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 예술인은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오롯이 투신하고, 가장 근본적인 물음들에 대한 자신만의 답변을 내어놓기 위해 끈질긴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러한 헌신은 곧 자기 자신을 향한 무한한 존경심과 자존심으로 이어지며, 그로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어 나갈 힘을 가진 역작은 미래를 빚어내기 위해 쉬지 않고 고뇌하는 이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바리톤 정 경의 [예술상인] 제 21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