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 거대한 오케스트라!
공교롭게도 한날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결혼식에서는 두 사람의 새로운 삶을 축복하는 축가를, 장례식에서는 유가족의 요청으로 진혼(鎭魂)곡을 부르게 되었다. 오랫동안 성악가로서 노래를 해 왔지만 같은 날 모두가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환희로운 노래를, 모두가 비통에 잠긴 자리에서 엄숙한 노래를 하게 된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공존한다는 자각과 함께 인간 삶에 녹아 있는 역설을 목격한 것만 같았다. 경외(敬畏)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극장 무대들에 대한 환상을 품은 시절이 있었다. 유명한 무대들에 서는 것이야말로 가수로서의 명예와 더불어 성공을 거두었다는 징표라고 믿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래를 하지 않는다. 예술의 본질적인 정의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예술 자체에 대한, 혹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는 대부분의 경우 ‘정의할 수 없음’으로 귀결되곤 한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기쁨과 슬픔 모두를 불러일으키는 역설, 그래도 어딘가를 향해 꾸역꾸역 흘러가는 삶. 그 모습은 마치 아무리 정의를 내리려 해도 정의되지 않는 ‘예술’과도 같았다. 결국 나는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경사와 조사가 함께 있어 공교로웠던 날, 축가와 애가(哀歌)를 번갈아 부르며 느낀 감정의 교차와 삶에 대한 경외심은 마치 위대한 예술 작품과 마주했을 때 창작자의 영혼과 공명하며 요동치던 마음과도 흡사했다. 유명 극장에 올라 잘 짜인 허구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의 진짜 삶이 시작되고 또 마감되는 교차점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적이고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한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처럼 특별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성악가로서 삶을 노래했을 뿐 마찬가지로 기악가는 악기로, 프로그래머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문학가는 글로 각자의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노래가 모두 한 데 모여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였던 셈이다.
인생 속에 즐비한 역설처럼, 하나의 마침표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미력하나마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으로서의 관점과 자세를 ‘예술상인’이라는 정의 속에 담아보려 애를 써 온 것이 벌써 마지막 화(話)에 이르렀다.
칼럼을 연재하면서 가장 놀랍고 창피했던 것은 이미 완성형이라고 여겼던 예술상인으로서의 신념과 철학이 막상 타인과 공유하려 드니 실제로는 턱없이 미진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주장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제와 털어놓는 사실이지만, 매일같이 무대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 온 것과는 달리 자판 앞에서의 나는 매번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감을 느끼고 자책했다.
무대에 올라섰을 때 눈앞을 메우는 관객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예술상인’이라는 나의 공연을 누군가가 관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기쁜 마음에 앞서 불안감과 걱정이 들었다. ‘과연 나는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여전히 배우는 입장임에도 주제넘는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무거운 의문들에 대한 답은 인생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그와 같은 새로운 표현 양태를 통해 예술상인이라는 존재의 스펙트럼과 소통 수단이 더욱 넓고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예술상인 칼럼은 여기에서 끝난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상인’의 탄생 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본격적인 행보는 곧 찍힐 마침표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저명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마지막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소망하라.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 바리톤 정 경의 [예술상인] 본편 최종장 - 제 28 화 (이후부터는 [예술상인] 특별편이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