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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핑이 May 05. 2023

자서전

괴롭힘 당하다

지방에 사는 내가 요즘 서울 갈 일이 많아져서 ktx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인생을 기록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막 하고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까먹기도 싫어서(ㅋㅋ) 그래서 제목도 자서전이라 지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진 않겠지만 그냥 내 인생일기 스타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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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


평범한 가정, 다정한 엄마와 과묵하고 경상도 상남자였던 아빠 그리고 한 살 차이 착한 오빠와 자라온 나의 유년시절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특히 아빠는 내가 성적이 안 나올 때 꾸중한 적 없고 그렇다고 적성검사(당시 대입방법 중 하나) 시험에서 학교전체에서 1등 했을 때도 잘했다거나 딱히 칭찬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과묵한 아빠가 나에게 항상 말하던 것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친구들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괴롭힘을 당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괴롭힘 당하지 말라는 얘기는 한적 없고 약한 친구들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것 절대 하지 말라고 항상 얘기했다.


철없을 때 아빠한테 “반에 누구누구가 왕따를 당하는데~ ”라고 스토리를 얘기하면 아빠는 기승전결 그 친구를 도와 주리고 했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그런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고, 모두가 행복하고 도와주면서 살아야 된다는 선한(?) 마음이 나에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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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23살, 나는 남들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취업에 성공했다. 초등학생? 때 다들 장래희망에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했을 때 나는 PD가 되겠다는 꿈이 확고했다. 학교 방송부와 방송캠프 활동, 영상학과 진학. 나는 내 꿈을 위해서 열심히 달렸다. 대학교 영상학과에 진학해서는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할 만큼 창의적이고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한두 해가 지날수록 우리나라 사회를 더욱 냉철하게 마주하게 됐고 방송국 AD, FD의 근무환경이나 월급은 10년 넘게 이어온 나의 꿈을 접게 만들었다.


새로운 것, 자유로운 것, 창의적인걸 좋아한 나는 그렇게 공공기관 행정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공공기관에 입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딸, 부러운 친구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정반대의 사람들과 정말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처음 들어간 부서에서 아빠뻘의 부장님이 갓 들어온 나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존중해 주는 문화는 그 회사에 애사심을 더욱 갖게 만들었다.


또 나의 업무가 회사 밖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 됨을 알게 되면서 일에 보람도 느꼈다. 그리고 제일 막내인 나를 대해주는 회사 선배님들(대리님,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 전부)의 태도에 내 후배가 들어온다면 이렇게 도와주고 존중해야겠다는 마음도 갖게 됐다.


2016년 3월에 입사해 그렇게 오 년 넘게 나는 애사심을 가지고 그 회사를 너무 좋아하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회사를 다녔다. 누군가는 회사가 기를 지옥같이 생각하고 싫다 했지만 나는 그냥 재밌었다. 그리고 뿌듯했다.


2020년 8월, 나는 입사하고 계속 모두가 기피하고 힘들어하는 부서에 계속 있었는데 드디어 다른 부서로 가게 되었다. 좋았는데 싫었다. 왜냐하면 거기엔 악명 높은 어떤 여자 부장과 지사장이 있었는데 나는 태생부터 그런 사람 간의 트러블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됐다. 하지만 부서이동을 한다는 것에 만족하며 그 부장&지사장과의 생활이 시작됐다.


말로만 들었던 그곳의 분위기는 정말 달랐다. 근무시간에 동료들과 말을 하려면 독서실에서처럼 속닥거려야 했고 공기가 무겁다는 문장을 처음으로 정말 느껴봤다. 정말 무슨 부장이 어떤 왕국의 왕이었고 그 사람의 말은 곧 규정이고 정답이었다.  실수하게 될까 봐 항상 긴장했고 내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보고서를 써서 가져가면, 맘에 들지 않으면 드라마나 영화처럼 보고서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곤 쓰레기통을 발로 차곤 했다. 그러면 분위기가 정말 … 숨소리조차 나지 않고 12명의 직원들이 눈치를 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곧 승진을 앞두고 있었고 밉보이기 싫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잘 적응하고 잘 지내고 싶었다. 그 회사를 정말 사랑했으니깐,


내가 부서를 옮기고 처음 한 일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청사 내 액자를 동일한 크기로 바꾸는 것. 공공기관이라 정부의 방침? 같은 내용과 회사의 경영방침 같은 내용의 액자가 두 개씩, 청사 내 벽면 곳곳에 있었는데 두 개의 액자 크기가 조금 다르고 모양이 통일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주문제작하여 바꾸는 것.


50만 원 넘는 예산을 들여 교체작업을 하는데 정말 도무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열심히 했다.  지사장 방에 커피를 채우는 일도, 지사장 취향에 맞게 과자를 사는 일도, 내가 주문한 노브랜드 물을 먹지 않아서 삼다수로 다시 바꿔오는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부장님은 나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정확한 이유야 그 사람에게 들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리고 동료들이 추측하는 99%의 이유는 ‘퇴근시간’이다.


정식 퇴근시간은 18:00, 그러나 오후 여섯 시가 되면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퇴근시간이 한참남아서 당연히 일을 하는 것처럼.


업무가 있을 때야 당연히 남아서 일을 했지만 대게는 부장 눈치만 살피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당연히 눈치를 봤다. 그래서 나는 업무를 모두 마쳤을 때는 18:10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내용을 보고 사람들이 MZ세대 특이라고 하려나? 근데 여하튼 나는 문제 될 게 없다고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1.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음

2. 내 일을 다 마쳤음

3. 근로계약이 09:00-18:00 임

4. 지각을 하지 않았음


그날도 나는 부서의 항상 정시에 퇴근하시는 남자 주임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먼저퇴근해 보겠습니다. 부장님,”


자신보다 일찍 가는 직원들의 인사에 언제나 대답은 하지 않았는데 그날 갑자기 나를 세웠다.

정확히는 나의 이름만 불렀으니 ‘나만’ 불러 세웠고 그 남자주임은 눈치를 보다 먼저 나가버렸다.


“000주임,  너 인사를 무슨 스케이트 타듯이 하니? ”


“네?”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  죄송합니다”


”가 “


‘야, 너’가 일상화된 사람이었지만 모든 직원이 있는 그 자리에서 5년 차인 내가 인사로 꾸중을 듣는다는 게 이 기분을 참.. 무슨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뭐 워낙 직원들에게 험한 말을 일삼았지만 내 업무능력이나 실수가 아닌 고작 인사? 그리고 정말 내가 이런 분위기에서 스케이트를 타면서 인사를 하러 갈까… 그날부터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 ‘괴롭힘’이.


다음날 출근을 하니 전체 직원에게 앞으로 퇴근할 때 인사하지 말라는 부장의 단체 쪽지가 와있었다.

누가 봐도, 어제 퇴근인사로 트러블이 있었던 나를 겨냥한 것 같았다. 그 날이후로는 근무시간에도 물론이고 퇴근할 때 더 눈치가 보였다.


나는 위축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나에게 말한 것. 누군가를 괴롭히고 다 함께 도와주며 사는 것에 반하는 사람은 저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내 잘못이 없기 때문에 위축되고 싶지 않았고 눈치를 주더라도 내 의사표현을 더욱 분명하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근데 더욱 웃긴 것은 주변에서 ‘나’를 특이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부서에 여자 대리님들은 나에게 와서 네가 부장님 비위를 좀 맞춰야 한다. 부장님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하고 더욱 살갑게 하고 주말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고 머리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얘기를 하고… 뭐 이런 것들을 내가 먼저 하라고 했다.


그런 말을 종종.. 자주 하셨는데 뭐 누구를 위한 조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가스라이팅에 넘어가지 않았다. 진-짜 납득이 안되어서, 내가 사회부적응자인가?라는 생각도 사실 들지 않았다. 처음 부서에서 만난 차장님들과 부장님들을 사석에서 만날만큼 인간관계를 잘하고 있었고 내 나름의 사회성, 인간성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기에 나도 나에게 불호의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에게 굳이 거짓으로 아양 떨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진짜 괴롬힘은 날로 더 심해졌다. 어느 날은 내가 다이어트 식품을 먹고 있었는데 본인의 허락 없이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머리 안 돌아가서 보고서 못쓰니깐 내 부하직원은 다이어트 못해, 라며 버럭 화를 냈다. 또 옷에 로고가 크다고 다른 여자직원과 비웃거나 휴가라도 하루 쓰려면 온갖 내 업무를 다 가지고 와서 다하고 가냐고 물어보는 등 … 뭐 유치하면서 일진 같은 행동을 자주 했다. (그래서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만 1년 중에 휴가 3개 정도 쓴 것 같다. )

굉장히 거슬리고 신경 쓰였지만 그렇지 않은 척했다.  


이 괴롭힘에 절정이 있었는데. 바로 ‘시간선택제’였다. 나는 개인사정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는 시간선택제 제도를 활용해야 했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이러한 제도를 모두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시 활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러한 부분 때문에 공공기관에 취업을 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입사했을 텐데 나 또한 그랬다.

근무환경이 좋지 못하고 불안정한 영상업계가 아닌

안정적이고 복지 좋은 공공기관.


모두가 그 부장과 지사장밑에서 이러한 제도를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했지만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제도를 눈치 보려고 사용하지 못하는 건 내 상식에서 어긋났다. 시간선택제 사용신청서를 가지고 간 날,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바로 반려당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반려당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크게 타격이 없었던 게 정해진 제도를 사용 못하게 하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괴롭힘은 더 커지더라도, 그리고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난 딱히 욕심이 없었기에 승진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감안했다.

일주일 정도 진짜 고난과 역경(매일 불려 다니며 회유와 반협박?)을 지나 나는 신청서에 서명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시간선택제 근무가 시작됐다.


근무시간이 하루에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일은 단 1%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것이 괴롭힘이라면 그냥 감안해야 했다. 진짜 숨쉴틈 없이

일했고 동료들과 말한마디 하지 않고 일만 했다. 점심도 빨리 먹고 앉아서 일을 했다. 하지만 늘 퇴근시간을 넘겼고 매일매일, 매일매일매일 1~2시간 초과 근무를 했다. 시간선택제는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받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피해 주고 싶지 않아서 괴롭히는 것에 당당하게 맞서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노트북으로 집에서도 일하고 언제 어디서든 회사에서 연락 오면 바로 일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업무를 빨리 끝내지 못한다. 내가 없는 두세 시간의 공백에 일이 생겨서 부서에 피해가 간다.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한다. ’ 참 힘들었다. 일보다도 그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진짜 힘들었다. 일은 그냥 하면 되는데 인간적으로 나를 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미워하고 싶어서.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진짜 힘들었다. 그리고 부장 편에 서서 이간질하고 내가 퇴근해도 노트북으로 업무처리를 해달라며 당연스럽게 일을 부탁하는 여자동료들도. 어쩌면 본인들도 살아남으려고 하는 행동이었겠지만 그 회사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했던 나에겐 정말 상처였다.


참다가, 시간선택제로 근무하던 세 달째쯤 되던 날이었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간질을 하는 여자동료에게 ‘나를 험담하는 얘기, 내가 이 제도를 활용하는데 대한 비난, 불쾌하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집에서 하는 일들이 당연한 것 아니다’라고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부장에게 업무를 절반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조정해 달라고 얘기했다.  


부장은 이미 내가 일을 다 해놔서 더 이상 할 게 없는 업무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것 말고 내가 회사에 없는 시간에 해야 하는 일들을

조정해 달라고 했다. 고민해 보겠다는 부장. 조금은 기대했고 다음날이 되었다.


출근을 했는데 어제 내가 말한 업무분장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퇴근시간에 한참 지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부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너, 같이 일 못하겠다  다시 그 부서로 가야겠다”


대뜸 내가 일을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제대로 하지 못해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근무시간에 최선을 다했고 업무시간도 넘겨가면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부서로 가야겠다고 하더라. 아마도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저렇게 말하니 내가 너무 비참했다. 저 말을 듣고 내가 뭐라 했는지 무슨 표정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너무 충격받아서


일단 퇴근하겠다 하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너무 서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나를 미워하지? 내가 문제인가? 살면서 그렇게 엉엉 울었던 적이 없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직원휴게실로 들어가려고 하니, 마침 지사장을 마주쳤다. 나에게 무슨 일이냐 묻더니 잠시 얘기하자 했다. 정말 이런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무슨 일이냐 계속 물었다. 내가 걱정되는 건 아니었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나면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피곤해지는 눈치로 나에게 계속 다그치며 물어봤다.


나도 바보같이 다 얘기했다. 그냥 말하지 말걸.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니깐 시간선택제를 하면 다 감당해야 하는 거다. 그냥 다시 취소해라. 그리고 그 부장이 원래 말버릇이 그러니 이해해라.


나이가 많다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의 예시라면 이게 정확한 것 같다. 그렇다고 퇴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 회사를 고작 이란 사람들 때문에 떠난다고? 좋은 사람이 분명 더 많은데 라며 나는 절대 저런 사람들 때문에 떠나지 않을 거라 더 다짐했다.



집에 가니 부장에게 카톡이 왔다. 진짜 역겨웠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지사장이 나를 만나고 바로 부장을 불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 같다고 했다. 한창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노조에서도 홍보하고 있던 참이라 여러 가지가 걱정되었던지.


부장이 말한 ‘좋은 방법’ 은 결국 내가 1년 만에 다시

원래 부서로 돌아간 것이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부장이 나를 보내겠다 했을 때 지사장이 말렸다고 들었다. 지사장에게 고마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버틴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 뒤로 새로운 정말 인간적인 부장님과 좋은

동료들을 만나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아갔고 가끔 그 부장을 마주칠 때 나도. 그 사람도 서로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정도 또 행복한 회사생활을 했다. 그러다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됐다. 마음 같아선 사내게시판에 그간 있었던 일을 폭로하고 면전에다 대고 하고 싶은 말들을 뱉어내고 싶었다. 거의 해야겠다 다짐 직전까지 갔다. 근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서? 내 감정과 시간을 들여서 저 사람의 잘못을 굳이 말해줘야 할까?


마지막 근무날. 나는 날 힘들게 했던 여자동료들, 의지했던 동기들, 후배들, 선배님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과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부장에게는 차마 가지 않았다. 그냥 저렇게 놔두는 것이 오히려 더 복수(?) 생각했다. 후배들과 송별회까지 찐하게 하고 정확히 꽉 채운 6년의 회사생활이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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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끔은 생각이 난다. 가끔이긴 하지만 그 기억이 너무 지옥 같다. 잠깐이었지만 나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자리한 것 같다. 브런치라는 곳에 첫 글을 쓰는데 주인공이 될 만큼..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마주쳤으면 좋겠다. 마주치면 물어보고 싶다. 나 왜 괴롭혔냐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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