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키워봐라 그 까짓 것 미안할 것도 아니더라.
아기가 태어나고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아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프게 태어나게 해서 미안했던 건지 아님 혼자 병실에 있게 해서 미안했던 건지.
무엇이 미안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인큐베이터 속에 누워있는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 난 아기를 향해 말했다.
아가,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그 후 9개월.
끝없는 사과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깜빡하고 이유식을 안 해놔 한 끼를 건너 뛸 때도 미안해.
제 때 기저귀를 안 갈아줘서 응아가 말라 붙은 엉덩이를 닦으며 미안해.
목욕하다 미끌해 욕조 물을 맛보게 해서 미안해.
엄마 혼자 네가 보는 앞에서 맛있게 빵 먹어 미안해.
그나마도 이정돈 가벼운 미안함이다.
때때론 진짜 미안해서 진땀이 날 때도 있다.
한 번은 아기와 놀아주기가 힘들어 조카가 쓰던 장난감 카트에 아기를 태우고 끌고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 안 이 곳 저 곳을 끌고 다니니 나도 편하고 아기도 만족하고. 이렇게 신나는 놀이가 또 있을까?
그렇게 긴장이 팍 풀린 순간 카트는 보기 좋게 전복하고 아기는 꺼이 꺼이 울었다.
그럴 때면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곤 괜한 죄책감에 친정엄마에게 고해성사를 드린다.
엄마, 오늘 끈이 카트 태우다 바닥에 머리 쾅했네.. 미안해 죽는 줄 알았어..
엄마는 내게 말씀하신다.
괜찮다. 미안해할 것 하~나도 없다. 더 키워봐라.
내가 아기에 대한 죄책감을 고백할 때마다 엄만 내게 그렇게 말씀하신다.
미안해할 것 하나 없다고.
언젠가 엄마에게 출산의 순간을 고백했을 때도 그랬다.
너무 힘든 진통을 이겨보려 숨을 꽉 참고 억지스럽게 힘만 줬던 게 아기가 창백하게 태어난 원인은 아니었을지 많이 미안하다는 내게 엄만
미안해할 것 없다.
더 살아봐라.
그 정도는 미안할 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엄마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땐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어려웠다.
앞으로 더 미안할 일이 많다는 뜻인 것도 같았지만 한편으론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식에게서 받을 배신이 만만찮으니 쌤쌤으로 생각하고 미안해 말란 말인 것도 같았다.
그러다 며칠 전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엄마가 또 그 얘기를 할 우연한 기회가 있었고
엄마는 평소보다 더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그 정도론 미안할 것도 없다.
앞으로 키워봐라.
자식에게 미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비로소 난 엄마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확실해졌다.
엄마가 우리를 키우시며 미안할 일이 많으셨나?
이해의 끝엔 물음이 따라왔다.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 했다.
자식에게 그렇게 큰 미안함을 가질 정도면 엄마에겐 상처일 수도 있겠단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미안했은 일, 그게 뭘까?
엄마는 언니의 딸을 꼬박 3년간 키우셨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우리 조카는 세상이 무너져도 외할머니만 있으면 되는 '외할미 바보'다. 엄마랑 같이 살면서도 외할머니만 오매불망 그리워할 만큼 조카는 외할머니의 큰 사랑 속에서 자랐다.
그 때문에 버릇도 없고 고집도 세고 아주 말괄량이 장난꾸러기다.
주변에서 그렇게 키우면 안된다며 충고 및 경고를 해줘도 엄만 조카를 오직 사랑으로만 품으신다.
그렇게 엄만 언니에게 미안했던 과거를 조카를 통해서 사과한다고 하셨다.
24살에 엄만 첫째인 언니를 낳고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나를 낳으셨다.
그 시절에야 그 나이에 엄마가 되는 것이 보통의 일이었겠지만, 지금의 기준에서 봤을 땐 아직 아무 준비도 안 됐을 어린 나이 아닌가?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시근이 덜 든 나이에 엄마가 되어 큰 딸을 친구쯤의 나이로 착각했던 것 같다 하셨다.
엄만 동생을 재워야 하니 다 큰 너는 먼저 들어가서 자렴.
엄만 동생을 먹여야 하니 다 큰 너는 알아서 골고루 먹으렴.
동생은 아직 어린 아기니 다 큰 너가 잘 돌봐줘야 한단다.
그러나 '다 큰 너'였던 언니의 나이는 고작 세 살.
엄만 이제와 조카를 키우며 그때의 잘못을 내게 한 번씩 꺼내어내셨다.
그리곤 언니에게 못 해준 그 보살핌을 언니 딸에게라도 서운함이 가실 만큼 주고 싶다 하신다.
난 엄마의 그 마음을 알기에 우리 아들보다 항상 조카가 먼저인 엄마에게 서운할 수도 없다.
그리곤 더는 엄마가 우리에게 무엇이 그리도 미안했을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린 충분히 사랑받았고, 따뜻한 가정 속에서 이만큼 자랐고, 심지어 새로이 가정을 꾸린 지금도 시시때때로 도움을 받고 있는데. . .
무엇이 그리도 미안하셨을까?
난 오히려 '그 정도론 미안해할 것도 없다'는 엄마의 말씀이 '그렇게 잘해주고 미안해해봐야 키워놓으면 말썽이나 부리고 엄마 뜻에 배신이나 하지'의 뜻으로 해석하는 게 더 맞을 것만 같은데.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리 잘 해주고 또 잘 해줘도 더 못해 준 것이 미안한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아들이 곧 10개월을 바라보며 무척이나 활발해졌다.
몸무게도 힘도 내가 감당하기 힘들어지더니 결국 오늘 내게 몸살이 세게 찾아왔다.
기침과 두통,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쑤심.
앉아 있기도 힘들어 누워있는 내게 아들 녀석은 귀엽게도 올라온 아랫니 두 개를 보이며 무서운 속도로 나를 타고 오른다.
끈아, 오늘만 혼자 좀 놀 수 없을까?
너무 아파서 못 놀아주겠어.
우리 엄마가 그렇게도 미안해할 것 없다 하시지만 난 오늘도 아들에게 이렇게 사과한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