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쓸모없는 것들의 일기장
물보라 일기장
2024. 11. 24 일요일
맑음 혹은 흐림, 아직 잘 모름
나는 우도진의 얼굴을 기억한다. 늘 술에 취해 있던 얼굴을. 상실감에 젖은 눈빛과 끝자락이 살짝 위로 올라간 입술을. 그녀는 입을 항상 다물고 있었는데 뭔가 결핍에 시달리는 인상을 주었다. 울적한 눈빛에 잘 어울리는 입술이었다. 커다란 두 눈에 담긴 그녀의 시선은 눈앞의 현실 세계를 보는 게 아니라 머나먼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 나른한 상념에 잠겨 있었다. 코는 아담하고 평범하고 예뻤다. 눈썹은 2B 연필로 그린 듯 감춰진 열정을 부드럽게 품고 있었다. 콜롬비아 원두커피가 생각나는 머리카락은 매력적인 색채로 반짝이곤 했다. 약간 마른 머릿결은 지나치게 풍성하지도 지나치게 모자라지도 않았다. 얼굴 전체에 어렴풋한 붉은 기운이 스며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볼 때마다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뺨과 머릿결을 만지며 입 맞추고 싶었다. 물론 그런 시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여행 다녀온 뒤에 일주일 내내 몸이 안 좋았다. 환절기인데 찬 공기를 마시며 Y 도서관까지 도보로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었다. 고작 두 시간 정도 걸어 다니고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을 보낸 셈이다. 오 년 만에 천식이 다시 도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몸살인지 천식인지 애매했다. 차라리 몸살이길 빌었다. 천식은 한 번 오면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해마다 겨울이 오기 전 환절기에는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올해는 맞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만 지내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앓다가 일찍 잠들었고 오늘 새벽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은데, 아내가 준 감기약 덕분이다. 아내는 먹다 남은 약을 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보관한다. 훗날 비슷한 증세가 있으면 보관해 둔 약을 꺼내곤 한다. 의사 처방 없이 약을 먹은 셈이지만, 내 컨디션이 그럭저럭 나아진 건 사실이다.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 확실하진 않다. 책상에 앉아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연습 삼아 소설 문장을 썼다. 그게 바로 저 위에 쓴 문장이다. 처음에는 세줄 썼다가, 읽어 보니 유치해서 고치고 고치고 고쳤다. 한 시간이 넘게 쓴 게 위의 문장이 전부이다. 공백 포함 456자이다. 사람이 아프면 약간 이상해진다고 하던데, 뭐 이상한 내용이긴 하다. 그래도 여러 번 고친 탓에 새로운 소설 첫 문장으로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우도진은 누구인가? 솔직히 나도 아직 모른다.
이것은, 탐정소설인가 로맨스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 공포소설일 수도 있다.
고민 중인 것은, 위의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은 지울까 말까?
마지막 문장은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하나의 단락을 마무리하기에는 제법 멋진 것 같지만 소설 내용을 전개할 때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 같다. 소설이 진행되다가 저 문장 하나 때문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키스를 못 한다면, 그건 정말 억울할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작가는 자신과 작중 인물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작중 인물과 거리를 둬야 한다. 그럼에도, 일인칭 소설을 쓸 때는 가끔 글을 쓰는 내가 곧 작중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에게 입 맞추고 싶은데,‘그런 시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라고 미리 서술해 버리면,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작중 인물과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생각해 봐도, 심하다. 아무래도 마지막 문장은 빼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ㅎㅎㅎ
머나먼 Y 도서관까지 힘들게 가서 빌려온 책은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강의』였다.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의 소설에 대한 나보코프의 해설도 함께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왕 간 김에 우연히 옆에 있던 다른 책 『나보코프 문학 강의』도 빌렸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핑커가 쓴 영어 글쓰기 지침서라는 『글쓰기의 감각』도 덩달아 나를 따라나섰다.
나보코프에 따르면, 좋은 작가는 좋은 독자이어야 한다.
나보코프는 어느 대학에서 강의할 때 작은 퀴즈를 냈다. <독자>의 정의를 열 개 주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독자의 정의가 될 수 있는 네 개를 골라보라고 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고 한다.
훌륭한 독자의 정의 네 개를 골라보세요.
1. 독자는 북클럽 회원이다.
2. 독자는 작품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3. 독자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에 집중한다.
4. 독자는 액션과 대화가 없는 작품보다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5. 독자는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영화로 본 적이 있다.
6. 독자는 새로 싹을 틔우는 작가다.
7. 독자는 상상력이 있다.
8. 독자는 기억력이 있다.
9. 독자는 사전을 갖고 있다.
10. 독자는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
위의 퀴즈와 관련하여 나보코프가 쓴 글을 읽어 보자.
주인공과 동일시, 액션, 사회경제적인 측면이나 역사적 측면을 고른 학생이 많았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짐작했듯이, 좋은 독자는 상상력, 기억력, 사전, 약간의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죠.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에게도 예술적인 감각을 계발하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내가 여기서 사용한 독자의 의미는 아주 넓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입니다. 훌륭한 독자, 중요한 독자,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책을 다시 읽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를 말해 주지요. 우리가 어떤 책을 처음 읽을 때,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줄에서 줄로,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열심히 움직이는 이 복잡한 물리적인 과정, 시간과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책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가는 과정, 이것이 예술적인 감상을 방해합니다. 그림을 볼 때는 특별한 방식으로 눈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책처럼 깊이와 전개라는 요소를 갖고 있는 그림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과 처음 접촉할 때, 시간이라는 요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 친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림을 볼 때의 눈처럼) 먼저 책 전체를 한꺼번에 받아들인 다음에 세세한 부분을 감상할 수 있는 기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로 책을 읽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그림을 볼 때와 같은 태도로 책을 대하게 됩니다. 그래도 진화의 어마어마한 걸작인 눈과 머리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머리는 훨씬 더 어마어마한 성공작이니까요. 소설책이든 과학책이든(이 두 책 사이의 경계선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뚜렷하지 않습니다) 종류를 막론하고 책은 먼저 머리에 호소합니다. 머리, 두뇌, 찌릿찌릿 신호를 전달하는 척추의 꼭대기에 있는 그것은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나보코프에 따르면, 우울한 독자가 밝은 책을 만나면 우울한 기분이 녹듯이 사라진다. 젊은 독자가 책을 어렵게 손에 쥐고 읽으려 애쓰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일단 시작하면 여러 가지 보상을 풍부하게 받는다. 한편 독자에게는 두 종류의 상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단순한 감정에 의지하여 책 속의 상황을 자기 경험으로 느끼거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낮은 수준의 상상력이 있다. 하지만 독자가 사용할 수 있는 진정한 도구는 개인적인 특성과는 상관없는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쁨이다. 독자의 정신과 작가의 정신 사이에 예술적이고 조화로운 균형이 이뤄져야 하고, 따라서 독자에게 가장 좋은 기질은 예술적인 기질과 과학적인 기질의 조합이라고 강조한다.
나보코프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나는, 독자의 정신과 작가의 정신 사이에 예술적이고 조화로운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는 그의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한다.
다시 피곤하다. 몸이 나른해져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