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박 Aug 30. 2023

자본주의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는 불합리함을 고발하는 도구이자 우리 사회의 민낯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곤 한다. 자본주의로 점철된 21세기,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는 두 작품을 만나볼 스물한 번째 ‘영화, 보고서‘ 시간.


작품 속 메시지가 관객에게 시사하는 부분 이외에도 독특한 미쟝센의 반복적인 등장, 각 장면에 적합한 음악의 다채로운 활용까지. 러닝타임 내내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두 작품에 대한 심심한 고찰을 시작하고자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BEASTS CLAWING AT STRAWS)』, 2020
© BEASTS CLAWING AT STRAWS

사건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돈가방'을 스쳐 지나간 인물들의 마지막 순간은 하나같이 불행했다. 그 그릇이 크든 작든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탐하려 했기에.

작품명에 왜 '짐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걸까. 흔히들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 마주한 이들 행위는 추악스러움의 끝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돈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다"는 웃픈 공식이 만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탐욕스러운 욕구를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짐승'이라고 명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액자식 구조로 사건이 진행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이 교차되면서 각 사건을 연결 짓는 단서들을 가볍게 던져준다. 영화 말미 각자의 길을 걸어오다 좁혀진 사건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Concrete Utopia)』, 2023
© Concrete Utopia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 다큐보다 더 다큐 같은, 주민들의 생존기가 궁금하다면.


부동산 경쟁에 열을 내는 모습 이내 앞선 노력들이 무색할 만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건물이 속속히 나타난다. 오프닝 시퀀스가 제법 기억에 남는다. 우아한 선율이 특징인 클래식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공정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일명 ’디스토피아’로 변질되어 가는 모순적인 상황을 되려 부각시킨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미래를 꿈꾸던 오늘이 잿빛 과거가 될 수도 있는 풍전등화와도 같은 상황 속에서도, 철저한 서열화와 계급구조는 늘 존재한다. 목숨은 위태롭지만 그와 별개로 조직 내에서 본인의 기여도, 능력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 이상하리 만큼 기괴해 불편한 감정을 들게 한다. ​‘생존’을 위한 정직한 경쟁이 아닌 ‘권위’를 과시하는 불공정한 싸움에 환호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는 듯하다.


© 2023. 박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