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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r 08. 2024

10 인분 노비가 될 수 있을까

여백서원의 전영애 작가님을 생각하며


'무엇을 시작하든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세상을 걱정하며 잡았던 서로의 뜨거운 손을 놓지 말고, 무엇보다 누구든 제자리에서 하던 일에서 손을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각자 자기 일을 성심껏 해가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불의에 대해 눈 부릅뜰 줄 알아야겠지만 주변 또한 돌아볼 줄 알고, 분수 넘게 이것저것 사느라 혹은 허겁지겁 남 따라가느라 허덕이던 손길로 제 옷깃도 좀 여며 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요, 모두가 뜨거운 가슴으로 자기 안의 등불을 켜는 시간이야말로 그 모든 것을 위한 성찰의 시간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전영애작가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책의 한 부분이다.

내 마음이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평생교육원에 입사한 지 2년이 되었다. 3월이 되면 항상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기다리는 일이 있다.

어떤 학습자들을 맞이할지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

드디어 3월이 되어서 각자 맡아야 할 반이 정해졌다. 나는 3반을 맡게 되었는데 이 반은 1시부터 수업이 진행되는  오후반 수업을 맡게 되었다.

업무 분담표도  받았다.  보탬 e 회계 업무까지 하게 되었다.

 '잘할 수 있을까. 회계업무 하기 싫어서 그 전 직장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인데 다시 또!'

순간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 회계 일인데, 이전 직장에서 e나라 시스템 업무 하면서 엄청 힘들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순간 마음속에 절망감과 위로감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머릿속이 안개에 갇혀 버렸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전에 회계 업무 처리 하고 오후에 수업하고 한다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일이라는 것이 항상 변수가 있다.

마음이 심드렁했지만 표정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감정을 잘 감추지 못하는 나이 든 어른이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노트를 펴고 끄적이기 시작했다.

한다, 안 한다, 선 긋기도 해보고, 하기 싫은 이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의 자신과의 내면 대화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기억했다. 초심!


'이곳에 있는 동안은 어떤 업무가 주어지든 나의 첫 마음을 잃지 말자.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교육원에 오는 우리 학습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여며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자.'라고 마음을 정했다.


 여백서원에  전영애 교수님이 계신다면 평생교육원에는 정은애 평생교육사가 있다.

그녀는 내가 닮고 싶은 어른이다. 이른 넷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신다. 당신 스스로를 7인분 노비라고 한다. 그 넓은 서원의 공간을 혼자서 관리하는 자신을 스스로가 그렇게 부른다.

그녀보다 젊은 나는 노비가 될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반 10인의 자긍심을 세워주는 평생교육사로는 자신이 있다.  문맹을 퇴치하고 자긍심을 키워주는, 그래서 그녀들의 삶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여백서원에 가서 전영애 교수님을 만나려고 한다. 7인분 노비님의 기운을 한가득 채워오고 싶다. 설레는 봄날의 하루다.



#책과강연 #백일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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