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엄마의 생신을 맞이하면서
여든한 살의 문 여사!
그녀는 시간을 거꾸로 살고 있다.
"나 좀 데리고 가라~"
"집에 가고 싶다!"
유치원에 간 어린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떼쓰는 마냥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안부를 전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에 당신 집에는 가실 수 없지만 그래도 3~4시간 외출을 나와 딸 집에 들러 식사 한 끼 정도 하고 다른 식구들 얼굴 한 번 보고 들어가신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어지럽다. 몸 보신 할 것 먹고 싶다."
"1층이랑 2층에 무화과 1박스씩 사서 나눠 줘라!"
예전의 풍채 좋고 호탕한 문 여사는 어디로 갔을까.
요양원에서 5시까지 외출 허락을 받고 집으로 모시고 왔다.
다들 퇴근을 하지 않아서 2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식당으로 가야 한다.
집에 온 문여사는 벽을 잡고, 책상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운동을 한다며 자랑을 한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엄마한테 자랑하는 것처럼...
실내 자전거 쪽으로 가시더니
"내가 이거 할 수 있을까?"
"엉덩이부터 앉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실내 자전거 안장에 앉아 아이처럼 좋아한다. 페달에 발은 올렸지만 돌리지는 못한다.
그냥 페달을 밀어내기만 한다.
"나도 할 수 있어야~, 주희야 할머니 잘하지!"
손녀에게 자랑하며 마냥 좋아하는 문 여사!
그녀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파킨슨으로 요양원에 들어간 지 5년이 되었다.
아직도 당신은 혼자서 밥도 해 먹고 다 할 수 있으니 집에만 데려다 달라 신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그래서 오히려 요양원에 가는 시간을 줄이고 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그래도 이렇게 뵐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자.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잦은 전화와 황당한 요구도 많지만 그냥 어린아이 투정이려니 생각하고 엄마의 마음이 되어 본다.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로 이동을 한다. 장어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와서 과일과 간단한 안주로 식구들이 모여 문 여사의 생신 파티를 한다. 이것저것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안심이 된다.
들어가기 싫다고 하실 때는 언제고 갈 시간이 아직 안됬냐며 또 걱정을 하신다.
간단히 이른 저녁을 드시고 문여사는 딸과 함께 요양원으로 돌아가셔야 한다.
"아이고!"
요양원에 들어서자 문여사는 한숨을 쉰다. 안도감일까?
어느덧 익숙해진 공간에서 주는 편안함일까?
마중 나온 요양원 선생님을 반갑게 마주하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내 마음이 그런 거겠지. 엄마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지도 몰라. 엄마 미안해.'
나올 때와는 사뭇 다른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이제는 내가 그녀의 엄마가 되어야 할 때 인가 보다.
그렇게 당당하고 체구 좋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절반으로 굽어진 허리와 작아진 얼굴, 80킬로 장신의 엄마는 53킬로까지 줄어든 가냘픈 머리 하얀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88세나 구순의 친구 부모님들 부고가 연잇는다. 그분들에 비하면 아직 엄마는 8~9년이 더 남았다.
'살아계시는 동안 한 번이라도 더 뵙고 맛있는 것 드실 수 있을 때 함께 먹어요.
이제 내년 1월이면 증손녀도 태어날 텐데....
엄마,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오래오래 기억해요.
엄마의 거꾸로 시간 속에 행복한 추억만 가득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할게요.'
하루가 참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