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시생이 싫어요!

내가 공시생인 것도 싫은데

by 글임자
22. 9.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봄은 한 번도 건너뛴 적이 없다.

영원히 계속되는 겨울도 없으며, 아무리 가을이 짧아졌다고는 해도 땡볕이 내리쬐다가 첫눈이 오는 법은 없다.


2009년 5월 23일을 잊을 수가 없다.

국가직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였고(당시 나의 국가직 점수는 외부 유출 금지령이 떨어졌으므로 이에 충실하게 임함으로써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로 했다.) 무슨 정신으로 치렀는지 지방직 시험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버스에 올랐는데, 듣고도 믿기 힘든 뉴스가 나왔다.

정말인가?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는 걸까?

그동안 너무 공부만 해서 내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헛것을 들은 게 아닐까?


그 뉴스에 술렁거렸던 마음도 잠시 일단은 뭔가 끝낸 홀가분한 마음에 '구꿈사' 카페에 들어갔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온통 지방직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수험생들이 가채점 결과를 두고 설왕설래하며 어느 지역은 커트라인이 얼마로 예상된다, 내 점수는 이 정도 예상한다 하며 다들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답을 찾아내는지 용한 학원들은 수험생들을 새로 영입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시험지를 집으로 갖고 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공무원 공채시험 감독관으로 갔을 때도 응시생들이 시험지를 가져갔던가 두고 갔던가?

기껏해야 10년 좀 더 전의 일인데 정확히 기억하기가 힘들다.

나는 이렇게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숱한 불합격의 날들로 인해 학습된 무기력에 잠식당해 그날은 다른 때와 다르게 그냥 모든 게 무덤덤하기만 했다.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을 때, 장수생 3년에 시험날을 피곤한 체육대회를 치른 날쯤으로 간주해 버렸다.

다른 때는 양심도 없이 뿌린 것에 비해 더 많은 수확을 은근히 바라기도 했고, 어쩐지 뭔가 됐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날은 정말이지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가산점이 있다고 해서 사무자동화 자격증을 따고 가산점을 좀 받았는데 그것도 가물가물하다. 최소 1점에서 3점 사이의 가산점이었다.

내가 가채점한 결과 예상 점수는 89점(가산점 포함)이었다. 웬일이래? 내가 이런 점수받을 날도 오는구나. 이 정도면 나도 '구꿈사'에서 당당히

"1점 차이로 떨어졌어요."

이런 글 올릴 자격이 되겠는걸?

시험 볼 때도 어렵다 쉽다 그런 느낌도 없이 그저 문제를 풀었고 집에 와서도 더는 원이 없다거나 후회스럽다거나 그런 마음도 전혀 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딱 한 명만 뽑는 지역에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저게 진짜 합격자 발표날 알게 될 내 점수라면 은근 기대해 봄 직도 하지만 90점을 받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니 나랑 똑같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도 아니야 최악으로 시험을 잘 본 국가 유공자라도 한 명 있다면 나는 끝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시생 신분으로 살았던 역사 이래 처음 구경해 보는 기특한 점수였다.

물론 고득점으로 거뜬히 시험에 합격했다는 둥, 국가직도 붙고 지방직도 붙었다는 둥, 더하게는 6개월 만에 혹은 1년 만에 붙었다는 확인할 길 없는 '구꿈사'회원들의 간증이 더러 있었지만 마지막 몇 달을 순수하게 공시생으로서의 삶만으로 충만했던 내가 받은 은혜가 그 점수였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부처님의 자비로 나도 '구꿈사'에 점수를 공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기분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어딘가에 있을 나의 경쟁자를 탐색하고 견제해야 했다.


본인이 어느 지역을 지원했고 가채점 결과 점수는 얼마라고 서로들 주고받고 하는데 아무리 뒤져도 나와 같은 지역을 지원한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나 혼자만 지원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처럼 무모한 수험생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을 텐데, 그의 잠복근무에 나는 애가 탔다.


"여기는 브런치 지역 지원자다. 좋은 말로 할 때 자수하라 오바! 당신은 이미 포위됐다. 해치지 않겠다. 나와라 오바!응답하라 오바!"

지지직, 지지직, 응답 없음!

아무리 확성기에 대고 용의자(?)를 찾아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처음엔 용의자 검거에 실패했다.

어딘가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라.

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 혼자 회심의 미소로 나를 가엾게 여길지도 몰라.

아!

나는 적에게 나를 너무 노출시켜 버렸다.


실은 당시는 지극히 '호모 소심이'였던지라(그러나 공무원 임용돼 일하다 보니 환골탈태할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지원한 지역을 밝히지 않고 두루뭉술 얘기하며 내 가채점 결과를 카페에 올렸다.

이미 감독관이 내 답안지를 수거해 봉투에 숨구멍 하나 없이 밀봉한 후였지만, 달리 어찌해 볼 방법은 없었지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누군가가 두려웠다.

정말 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가뜩이나 피도 모자라 어지러운 사람이 그런 시간들을 견디는 것은 고역이었다.


처음에 지역을 선택하고 응시할 때는 망설임이 전혀 없었는데(아마도 제정신은 아니었을 테니까) 오히려 시험을 보고 나니까 엄습하는 이 초조함이라니, 그러나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괜히 그 지역으로 시험을 봤나 싶기도 하고 일이 꼬인 것 같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서 빨리 용의자 검거에 성공하기를 비나이다.'

독한 녀석이 걸렸군.

보통내기가 아니야.

악질이야, 용케도 잘 숨어있단 말씀이야.


또다시 그 짓을 해야만 하는 걸까.

싫어, 싫어 그 생활은 사람으로서 할 게 아니야.

공산당도 싫지만

"나는 공시생도 싫어요!"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정말이지 다시는 복습할 생각 없어.

진심으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어쩐다지?

차라리 시험 하루 전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을게요.

그냥 하루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리석은 자여,

돌아가려면 응시 지역을 선택하기 전으로 돌아가야지.

양심상 그렇게까지 바랄 수가 없었다.

나는 실력은 없었으나 대신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다음날 치를 시험의 초조함을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피부관리로 승화시키던 그 밤, 당최 시험을 하루 앞둔 수험생의 자세라고 믿을 수 없는 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오히려 더 평화로웠다.


이전 11화'그만하고 시집이나 가라'는 그 말보다 더 무서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