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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1. 2024

확실히 친아들, 확실히 남의 아들

데친 햄을 사이에 두고

2024. 12. 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는 진짜 요리를 잘해. 엄마가 만들면 다 맛있단 말이야. 엄마는 어쩜 그렇게 요리를 맛있게 해?"

"김밥에 햄도 안 들어갔는데 그래도 맛있어?"

"응. 괜찮아. 햄 없어도 맛만 좋아."

"그래도 우리 아들은 햄이 있는 김밥을 더 좋아하잖아."

"아니야. 없어도 진짜 엄마 김밥은 맛있어."


얘가 금요일 아침부터 왜 이렇게 인심이 후한 거람?

평소랑은 살짝 다르네?

친정에서 가져온 시금치와 당근과 달걀을 잔뜩 넣은 김밥을 내놓은 날이었다.


일부러, 햄을 넣지 않고 김밥을 만들 작정으로 애초에 장을 볼 때 장 볼 목록에 넣지도 않았었다.

단무지 대신 마늘종 장아찌를 넣을까 하다가 마침 그날 딸이 실과 시간에 주먹밥을 만드는데 단무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어차피 사야 할 단무지니 이왕이면 우엉도 같이 파는 걸로 사 뒀었다. 원래는 다른 친구가 단무지를 담당했는데 집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딸이 그럼 본인이 책임지고 가져가겠다고 약속을 해서 급히 구입한 단무지였다. 그래서, 단무지 본 김에 금요일 아침에 김밥을 싼 것이다. 딸은 겨우 단무지 두 개만 필요했으므로 남은 단무지를 마땅히 쓸 만한 데가 없길래 김밥이나 싸자고 벌인 일이었다.

"엄마, 김밥에 햄 있어? 햄 없으면 맛없는데. 엄마는 왜 햄을 안 넣어줘?"

다른 날 같으면 이런 반응을 보였을 아들이었다.

나도 무조건 햄을 안 넣는 것도 아닌데, 간헐적으로 넣어 주기도 하는데 정말 억울하다.

물론 햄을 김밥에 넣더라도 한번 뜨거운 물에 데쳐서 사용한다. 

매번 이런 나의 모습을 우리 집 성인 남성은 굳이 간섭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냥 대충 해."

본인이 대충 한다고 남한테도 대충 하라는 건가?

대충 할 게 있고 신경 써야 할 게 따로 있는 거지.

"밖에서 사 먹는 김밥도 다 당신처럼 쌀 것 같아? 안 그럴걸?"

여긴 집안이고 내 자식 먹일 거니까 더 신경 쓰는 거지. 어디서 바깥 음식을 걸고넘어지는 게지?

음식점에서 손님은 남이고 우리 집에서 아이들은 자식인데 더 신경 쓰고 싶은 건 당연한 부모 마음이 아닌가?

"이것저것 다 따지면 먹을 거 하나도 없어."

내가 따지긴 뭘 그렇게 따졌다고 저러시는 거람?

너무 멀리 가신다.

"너무 그렇게 하면 피곤하다니까."

내가 '너무 그렇게' 한 것은 전혀 없다. 그저 햄을 한 번 끓는 물에 데쳐서 쓰면 안 좋은 물질이 그나마 조금 줄어든다길래 그래서 그랬던 것뿐이다. 내 자식 먹는 거니까 그렇게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말이다. 어느 어미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동시에 생각했다. 확신했다. 어느 아비는 절대로  '너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귀찮아서라도 그런 번거로운 작업을 거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만들어 놓으면 잡수기만 하시면서 피곤하긴 누가 피곤하단 말인가. (물론 결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햄을 끓는 물에 데치다가 피곤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던 대로 할 것인데 말이다.

"어쩌다 한 번 넣어 먹는 건데 뭐 어때?"

그래, 이 양반아. 말 한 번 잘했다.

어쩌다 한 번 넣어 먹으니까 그래서 더 그렇게 신경 쓰고 싶었다, 왜? 어쩔래?

내가 하겠다는데, 본인 보고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잠자코 있다가 굿이나 보고 김밥이나 잡술 일이지 웬 참견이 저리도 심할까?

한 두 번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니 정작 나는 그런 참견에 심한 피로를 느끼곤 한다.

그깟 햄 하루에 백 만 스물두 번 끓는 물에 데쳐도 나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다.

진정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저런(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나 않았으면) 말 한마디다. 그게 얼마나 나를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는 걸까?

하긴 알 턱이 없지.

아는 사람이면 저렇게 말하지도 않지.

"얘들아, 햄 같은 가공식품이 몸에 안 좋은 건 너희들도 알지? 근데 끓는 물에 한 번 데치면 그나마 안 좋은 물질이 좀 제거가 된대.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럼 짠맛도 좀 줄어들고 몸에도 덜 해롭대. 괜찮지?"

라고 아들에게 말하면 내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역시 엄마야.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 귀찮을 텐데 항상 그렇게 하잖아. 우리 건강을 생각해서. 그치?"

"당연하지. 엄마는 너희 건강이 제일 중요해."

"이렇게 햄을 데치느라고 엄마 고생했겠다. 엄마. 힘들었지? 힘들면 안 해도 돼. 우린 그냥 먹어도 돼."

"아니야,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들어. 우리 아들 딸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너희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엄만 피로가 다 풀려. "

"엄마는 이렇게 우리를 생각해 준다니까.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어쩜 우리 아드님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저렇게 예쁘게 할까? 엄마도 우리 아들 사랑해."

(느닷없이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며늘아기야, 넌 좋겠구나...)

굳이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내 진심을 알아주는 아들이 있어 세상 든든했다.

나도 안다.

어쩌다 한 번 햄을 넣은 김밥을 먹는 것은 치명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확실히 그냥 바로 먹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느낌에 항상 데쳐왔었다. 

밖에서 사 먹는 김밥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나처럼 하지 않는 데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 먹어야 하는 김밥이라면 그냥 감수하고 먹을 의향이 충분히 있지만 내가 집에서 만드는 김밥은 단 한 줄을 말더라도 좀 덜 해로운 쪽으로 말고 싶었을 뿐이다.

김밥을 쌀 때마다(사실 나는 김밥을 자주 싸는 편이고 햄은 두세 번에 한 번 정도 넣어주며 가능하면 채소를 많이 넣어서 만드는 편이다.) 일일이 저런 과정을 거치는 게 그 양반이 보기에는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귀찮을 때도 있다, 솔직히.

그러나,

여자는 약하지만 김밥에 넣을 햄을 한 번 데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어머니는 강한 법이다.

특히나 엄마 옆에서 잔소리만 하고 간섭하는 아빠를 둔 남매의 어머니는 더욱 강하다.

고로 나는 또 데칠 것이다.


나는 살짝 생각해 봤다.

햄을 데친 물만 따로 모았다가 어떤 한 사람만을 위해 음식을 해줄까 보다.

국이라도 끓여줄까, 아니면 밥을 지어줄까.

이건 어디까지나 그 주인공의 태도에 달려있다.

내가 실행에 옮기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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